삽화가 된 휴지통*
김뱅상
머그 컵?
휴지통 앞에서 말이 꺾인다
브도블록 한 장쯤, 기울어진 머그잔에 스트로 꽂아 넣자
뭉그러지는 속엣말 몇 모금
와글시끌, 끌려오는 발바닥 조각들
가로세로들, 콜라주
나 왜 휴지통 앞에 서 있지?
*
얼굴 따윈 필요 없어, 뒤통수를 반쯤 기울여 보면 알아
숨은 것들이란 가장자리 쪽으로 기울거든
머그 컵을 뒤집는다 오토바이 소리 자동차 소음 엎어지고
소프라노, 어제 죽은 여배우의 대사 비스듬히 선다
공중으로 돌아가려는 것일까?
너와 난 어깨를 들썩였잖아, 어슷 햇살이 잘려 나가는 찰나였어
라운드 미드나잇 흐르고
피카소 달리 에른스트 마그리트, 지나가고
머릿속에 엉겨드는 토끼 여우, 이건 뭐! 짐승도 아니고······
비스듬한 것들은 늘 새롭지
저 휴지통 좀 봐, 기울어 있잖아 오늘은 취하지도 않았어
*
미술관 앞, 제 발로 걸어 나간 발바닥들 자꾸만 말을 걸어오고
난 머그 컵이나 툭툭, 기울이며
-전문(p. 82-83)
* 르네 마르리트, 「삽화가 된 젊음」 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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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목문학 제6집 『물을 돌리다』에서/ 2024. 7. 30. <파란> 펴냄
* 김뱅상/ 2017년『사이펀』으로 등단, 시집『누군가 먹고 싶은 오후』『어느 세계에 당도할 뭇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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