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극장
마윤지
비오는 날 극장에는 개구리가 많아요
사람은 죽어서 별이 아니라 개구리가 되거든요
여기서는 언제든 자신의 죽음을 다시 볼 수 있어요
때로는 요청에 의한 다큐를 함께 보고요
주택가에서 살아남는 방법에 관한 상영 114분
들키지 않고 우는 방법에 관한 재상영 263분
그러나 역시 최고 인기는
새벽녘 같은 푸른 스크린 앞
부신 눈을 깜빡이며 보는 죽음이에요
손바닥을 펼쳐 사이사이 투명한
초록빛 비탈을 적시는 개구리들
우는 것은 개구리들 뿐이지요
이젠 개구리들도 비가 오는 날에만 울지요
의자 밑
인간들이 흘리고 간 한 줌의 자갈
그것이 연못이었다는 이야기
떼어 낸 심장이 식염수 속에서
한동안 혼자 뛰는 것처럼
떨어져 나온 슬픔이
미처 다 걸어가지 못하고
멈추기 전에 낚아야 해요
내가 나를 본 적도 있을까요?
개구리이기 이전에요
영화 속 불운은 내 것이 아니라고 믿었을 때요
나는 극장에서 사람 구경을 자주 해요
사람들이 어둠 뒤에 숨어 울고 있는 걸
반짝이는 죽음이라고 이름 붙였거든요
영화 좋아해요?
극장에 올래요?
-전문(p. 44-45)
▶검은 투명(발췌)_ 송현지/ 문학평론가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을 떠올리며 마음껏 울기 위해, 현실에서 살아나는 방법("주택가에서 살아남는 방법")과 "들키지 않고 우는 방법"에 대해 배우기 위해 극장에 간다. 실제로 극장의 어둠은 우리의 감정을 감춰 주고 혹여 감정이 노출되더라도 그것이 스크린에 전개되는 이야기들로 인한 것인 양 가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숨어 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물론 그들이 가는 곳이 실제 극장이 아니라 일종의 비유로 제시된 곳이라고 해도 큰 관계는 없다. 자신의 삶과 슬픔에 대해 밤새 생각하는 이에게 지난 순간들은 스크린에 영상이 비치는 것처럼 떠올려지기 때문에 저러한 비유를 통해 그들이 어떤 어둠 속에 숨어서 울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마윤지가 이렇게 숨어 우는 이들을 죽은 이들이라 칭하며 그들의 몸이 이미 투명해졌다는 사실("손바닥 사이사이 투명한")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사람은 죽어서 개구리가 되며, 우는 것은 개구리들 뿐이라는 그의 말은 어떤 울음도 허용되지 않는 세계를, 운다면 더 이상 인간으로 기입되지 않는 이 세계를 서늘하게 환기하는 한편, 이곳에서 우리는 이와 같이 숨은 채로 울 수밖에 없음을 드러낸다. (p. 시 44-45/ 론 4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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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파란』 2024-여름(33)호 <hot summer derby/ 마윤지_시인론> 에서
* 마윤지/ 시인, 2022년 『계간 파란』을 통해 작품 활동시작, 시집 『개구리극장』
* 송현지/ 문학평론가, 202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비평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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