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멈춤
박순례
삼십 년 된 장롱을 버렸다
나를 버렸다
이십 년 된 장식장을 버렸다
꿈을 버렸다
왕골 돗자리를 버렸다
추억을 버렸다
매 묵화 병풍을 버렸다
과거를 버렸다
접시를 버리려다 멈춘다
이유식을 먹이던 접시
버리려던 딸아이들이 빙글 돈다
접시를 돌린다
꽃을 따라다니며 엄마 놀이를 하고
애기 오리가 점점 자라
삼지창을 든 오빠와 뒤뚱거리던 오리 궁둥이들
멜라닌 접시에서 아이들 논다
대낮인데 하늘엔 별이 뜨고 달이 뜨고
달콤하게 꿈을 키우던 아이들
접시에서 지금도 뛰어논다
햇살이 접시 안에 듬뿍 안긴다
-전문(p. 5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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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목문학 제6집 『물을 돌리다』에서/ 2024. 7. 30. <파란> 펴냄
* 박순례/ 2016년『여기』를 통해 등단, 시집『침묵이 풍경이 되는 시간』『고양이 소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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