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른쪽 눈을 감았다
전봉건(1928-1988, 60세)
산골짜기에서 자랐다고 하였다.
그는 이따금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위로해주려고 했다.
그러면 그는 말하였다.
"소새끼가 죽었을게야······"
나는 그를 위로해주려고 했다.
탄대의 빈자리가 메워졌다.
몇 번이고 그는 철모 밑으로 숲을 들여댜보았다.
서로 가지를 펴는 나무와 나무 사이와
반사하는 금속과 일광도 보았다.
호壕들을 발견하였다.
그는 오른쪽 포켓에서 연필과 수첩을 끄집어내었다.
85밀리였다.
불발탄 한 알이 굴러내렸다.
나는 진출하였다. 11시 방향으로 40분간이 지나고······ 나는 정면 낮
은 능선위에서 가만히 낙하하는 따발총을 보았다.
나는 다시 왼쪽 눈을 감았다. 숨을 그쳤다.
손가락이 다시 내가 모르게 방아쇠를 당겼다.
제1보초선으로 보였다.
나는 또 한번 160야드의 사정을 재어보았다.
나는 그와 격발 요령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얼굴에 흙과 풀뿌리와 돌조각이 와 닿았다.
가쁜 숨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야간 포격이 끝난 아침에 비행운이 걸려 있었다.
피리와 탱크와 지뢰원 주변에서 바람이 곤두섰다.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소새끼가 죽었을게야······"
헬리콥터가 남으로 기울어져갔다.
그는 그의 산골짜기가 북으로 7마일가량 남았다고 하였다.
19시 반쯤이었다.
그는 재미나는 추격전에서 웃으며 달리다가
꼬꾸라졌다. 저격이었다.
눈을 감았다.
그는 왼쪽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른쪽 눈을 감았다.
-전문,(남진우 엮음 『전봉건 시 전집』, 문학동네, 2008, pp.25~26)
▣ 또 하나의 실존 : '아련한 죽음'에서 '투명한 표현'으로(부분)_정과리/ 문학평론가
전봉건은 한국전쟁에 직접 참전한 희귀한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썩 보드라운 이미지들로 포장되어 있는 그의 시는 실상 '6 · 25를 연상시키는 경우가 상당하다. 또한 그는 타계할 때까지 『6 · 25』 연작시를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이 모두에게 동일한 정서를 가꾸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전봉건의 전쟁 체험도 오로지 그만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참전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시를 그가 썼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른쪽 눈을 감았다」는 그런 사정의 변별성을 알게 해준다. 길지만 음미를 위해 전문을 인용한다.
*
나와 전우, 2인이 출현하는 일종의 극시劇詩이다. "산골짜기에서 자란" 전우는 입대하기 전 키우던 소에 관해 말한다. 자신이 돌보지 못했으니 아마 죽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나'는 전우를 "위로해주려고 했다." '나'가 무언가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전우의 '소 걱정'은 해소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말이 나오는 이 순간이 전투 중임을 암시하는 묘사가 나온다. "탄대의 빈자리가 메워졌다.", "서로 가지를 펴는 나무와 나무 사이와/ 반사하는 금속과 일광도 보았다." "호壕들을 발견하고 그 안에 뛰어들어 피하기도 한다.
'소 생각'에 사로잡힌 전우의 행동은 특이하다. 그는 전투 도중에도 입대 전의 일상적인 일에 해당할 법한 행동을 자주 취한다. "몇 번이고 그는 철모 밑으로 숲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참호 안에서 안전을 확보했을 때는 "오른쪽 포켓에서 연필과 수첩을 끄집어내었다."
그런 와중에도 전투는 계속된다. '나'는 참호에서 "진출"해 "11시 방향으로 40분간이 지났"을 때 "정면 낮은 능선 위에" 있는 적군을 쏘아 쓰러뜨린다. "가만히 낙하하는 따발총을 보았다." 적을 쏠 때 '나'는 "왼쪽 눈을 감"는다. '나'와 전우는 서로 사격 요령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렇게 싸우며 이갸기하다 보니, 어느새 "그의 산골짜기가 북으로 7마일 가량 남았다"는 걸 전우는 확인한다. "19시 반쯤이었다."
그는 재미나는 추격전에서 웃으며 달리다가
꼬꾸라졌다. 저격이었다.
눈을 감았다.
그는 왼쪽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른쪽 눈을 감았다.
마지막 대목은 전쟁과 일상이 뒤섞인 상황의 파국을 보여준다. 전투에 임했을 때, '나'는 "왼쪽 눈을 감았다." 그런데 전투와 일상을 혼동한 '그'는 "왼쪽 눈을 감"고 곧 이어서 "오늘쪽 눈[도] 감았다."
이 극시는 실제 사건을 하나의 '상황'으로 만들면서 의미를 부각시킨다. 표면적인 전언은 '적을 무너뜨리고 나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론 둘 다 죽는다'이다. 이 사정을 암시하는 단위는 공간과 시간의 혼동이다. "11시 방향"에서 "17시 반쯤" 사이에 시간의 이동이 있는 줄 착각하게 한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의 공간에 갇혀 있을 뿐이고, 그 안에서 시간이 태평히 지나가는 줄 착각하지만 그러나 닫힌 세상은 변화가 없다. 그런 상황을 요약하는 도상이 '참호'이다. 참호는 안전을 보장하는 듯 지옥을 유지시킨다. 그런데 여기는 첫 번째 계기이다. 여기에서는 안전이 보장된다. 그러나 이 안전에 의해서 전쟁과 일상이 혼동된다. 그것이 '그'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러면 참호와 참호 바깥의 구별이 흐려지고 산 자가 죽은 자가 된다. 그렇게 해서 공멸이 온다. 그것이 전쟁의 실상이다. (p. 시 187-188/ 론 186 · 18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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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4-3월(411)호 <기획연재 57/ 정과리의 시의 숲속으로> 에서
* 정과리/ 1979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평론 부문 등단, 저서 『문학, 존재의 변증법』(1985), 『스밈과 짜임』(1988), 『글숨의 광합성』(2009), 『1980년대의 북극꽃들아, 뿔고둥을 불어라』(2014)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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