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추모-시) 동경/ 노혜봉

검지 정숙자 2024. 8. 2. 01:21

 

< 故 노혜봉 시인   추모>

 

    동경

 

    노혜봉(1941-2024, 83세)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金子의 슬픔을 알아주네

  金子 홀로

  모든 기쁨에서 동떨어져

  푸른 하늘 저 편을 바라보네

  아! 나를 사랑하고 나를 아는 이

  저 멀리 있는데

  눈은 어지럽고 내 마음 불타네

  그리움을 아는 이만이

  金子의 괴로움을 알아주네*

 

  金子는수선화다노란색만좋아한다金子는 호로비츠가연주하는슈만의꿈쌍쌍의호수를건너는백조다金子는피아노의시인쇼팽드볼작브람스브루흐의협주곡2악장이다金子는소펜하우어가가장아끼는제자다金子는젊은베르테르의슬픔의주인공그러나권총자살을미루어버린용감한처녀金子는젊은이의양지를찾아나선단두대의몬티金子의자존심은겨울바닷가에파묻힌열아홉개의소라껍데기金子는쟝모레아스나는흐느낌과눈물에젖은사랑을생각한다노란싸인지에적힌세종문화회관뒷골목판잣집서울특별시종로구세종로154번지지금은없어진누런깡보리밥두공기설익은깍두기한보시기가金子다金子는복어알로양심을채운욕심쟁이복어한마리다金子는사랑의묘약을만들줄모르는지킬박사와하이드씨金子는손돌바람리야카좌판에까맣게타서누워있는강원도찰옥수수金子는희망이다교육자다참된삶의소유자다金子는고은국민학교운동장에퍼붓는7월의장대비다.

 

 金子는 홍제동화장터에서 21년 3개월 5일 7시간 11분 33초로 길고 긴 생애를 마감했다

 

  솨아! 솨아! 솨아! 잎, 잎, 잎······

  자두나무 잎사귀가 빨갛게 흔들린다.

 

  金子 입술에 말라붙은 피

  金子의 긴 속눈썹

  金子의 푸르딩딩한 살점

 

  태풍 쥬디호가 상륙했다는 오늘 밤

 

  金子는 쥬디호를 타고 되돌아올까.

     -전문, (시선집『소리가 잠든 꽃물』, 2019, 시선사, p.10-11)

 

    * 첫 연은 괴테의 시 「동경」에서 인용

 

  

  ■ 노혜봉 시인이 2024년 1월 25일 타계했다. 시인은 1941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성균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월간『문학정신』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산화가』『쇠귀, 저 깊은 골짝』『좋을好』『見者, 첫눈에 반해서』와 시선집『소리가 잠든 꽃물』 등이 있다. 성균문학상,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류주현 향토문학상, 경기도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편집부)  

 

   ※ 블로그註 : 위 시의 2연은 띄어쓰가 전혀 없는 글입니다. 컴퓨터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지 어찌해도 몇 군데의 '金子'가 붙여지지 않아, 부득이 그대로 두었음을 참고·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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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4-3월(411)호 <권두>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