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두시>
광야
김남조(1927-2023, 96세)
오늘 이미 저물녘이니
나의 삶 지극민망하다
시를 이루고저 했으되
뜻과 말이 한 가지로 남루이었을 뿐
생각느니 너무 오래
광야에 가보지 못하였다
그곳은 키 큰 바람들이
세월없이 기다려 있다가
함께 말없이 오래오래
지평을 바라보아 주는 곳
그러자니 어른이 좀 되어 돌아오는 곳
삶의 가열한 반의 얼굴,
혼이 굴종당하려 하면
생명을 내던지고 일어설 계율을
이 시대 동서남북
어느 스승이 일깨워 주는가
어느덧 나는 사랑을 말하지도 않고
번뇌하는 두통과도 헤어져
반수면의 수렁에서
안일 나태한 나날이다가
절대의 절대적 위급이라는
음습한 독백에 부대끼노니
필연 광야에 가야겠다
그곳에서 키 큰 바람들과
말없이 오래오래 지평을 바라봐야겠다
눈과 머리와 가슴과
지쳐 드러누운 내 영혼까지
거기 다 함께 이어야겠다
-전문(p. 12)
김남조 시인이 2023년 10월 10일 오전 노환으로 향년 96세. 1927년 경북 대구에서 출생하여, 1948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재학 중 ⟪연합신문⟫에 시 「잔상」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 『목숨』 외 18권을 펴내며 한국시단에 큰 족적을 남겼다. 한국시인협회상, 대한민국예술원상, 3·1문화상, 은관문화훈장 등을 받았다. 한국시인협회, 한국여성문학인회, 한국가톨릭문인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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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월간 『현대시』 2023년 11월(4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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