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미한 웃음 이미지
최동호
어둠 속에서 백지 같은 얼굴 하나 희미하게 웃다가 사라진다.
그 희미한 이미지가 오래 머리에 박혀 지워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갑자기 죽거나 요절한 친구가 항상 떠나지 않고
어딘가에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가
불쑥 살아나와 백지처럼 웃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백지는 항상 희미하고 낯선 얼굴로 새로운 고백을 강요한다.
꼬집어 말해야 할 특별한 잘못 없어도 아무 이유도 없이 그들을
아직 잊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주고 나서야
그들은 안심한 듯 잘 지내고 살라고 알 수 없는 희미한
백지 같은 웃음을 거두고 사라져가야 불편한 마음도 지울 수 있다
-전문(p.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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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네르바』 2023-겨울(92)호 <신작시> 에서
* 최동호/ 1976년 시집『황사바람』으로 시 부문 & 197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평론 부분 등단, 시집『공놀이하는 달마』『불꽃 비단벌레』『황금 가랑잎』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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