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박채경_나그네의 시인 박목월(발췌)/ 이별가 : 박목월

검지 정숙자 2024. 1. 1. 02:38

 

    이별가

 

    박목월(1915-1978, 63세)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 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전문-

 

 

  ▶ 나그네의 시인 박목월(발췌) _박채경/ 문학평론가

  흔히 창록파의 시인으로 알려진 막목월의 본명은 박영종이다. 그는 1915년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면에서 아버지 박준필朴準弼과 어머니 박인재朴仁哉 사이의 2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1919년 경상북도 경주군 서면 모량리(현 경주시 건천읍 모량리)로 이주하였다. 경주가 고향인 대표 문인은 목월 이외에도 또 있다. 김동리가 바로 그러한데, 그는 1913년생으로 목월보다 두 살 위이다. 한 고향에서 시와 소설을 대표하는 문인이 태어났으니, 이들을 기리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그래서 경주에서는 이들의 문학관을 따로 만들지 않고, <동리·목월 문학관>으로 함께 운영하고 있다. 장소는 바로 불국사 맞은편으로, 표지판을 따라 가면 문학관으로 이어지는 돌다리가 나오는데 꽤 운치가 있다. 도로는 불국사를 관람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표지판을 따라 사잇길로 접어들면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 한적하고 고즈넉하다. 예전에는 입장료를 따로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에 가보니 매표소에 무료입장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

 

  저멀리 외따로 떨어진 상상의 자연으로부터 벗어난 서정적 자아는 이제 주변적인 것들을 세밀하게 되돌아보게 된다. 「이별가」가 주목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러하다. 하나는 허구 속에서 뛰놀던 자아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혹은 삶 속에서 고뇌하는 자아의 발견이라는 점이다. 이는 곧 사실의 차원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는데,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라는 담론은 이런 상황을 잘 말해준다고 하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경상도 방언에 대한 발견이다. 이는 곧 자신이 살고 있는 고향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이제 거의 시들은 이렇게 실존적 현실을 돌아보며 자신이 자란 고향이라는 배음 속에서 길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목월의 시들은 고향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무엇보다 그가 자란 곳이 자연 속에 있었다는 점이 그러한데, 시인은 시대의 응전에 따라 이 자연을 반미메시스의 영역에 두었다가 다시 미메시스의 영역으로 옮아오는 피이드백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시 세계를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그 도정에서 목월은 「윤사월」의 '눈먼 처녀'와 대화하고, 그 말의 참뜻이 무엇인지 계속 알아내고자 했다. 그 해법이란 자연에 둘러싸인 목월의 생가와 거기서 길러진 시정신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가의 뒷숲에서 울리는 아름다운 나무 소리가 여과 없이 들리는 것, 그것이 그가 꿈꾸어 온 시 정신이었다고 하겠다. (p. 시 211-212/ 론 202-203 (···) 21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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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행문학』 2023-겨울(5)호 <작가의 고향 5_박목월> 에서

 * 박채경/ ?,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