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산골(散骨) 외 1편/ 진효정

검지 정숙자 2023. 11. 5. 02:26

 

    산골散骨 외 1편

 

     진효정

 

 

  그날의 기막힌 슬픔을 일러바칠 데가 없다

 

  내 아버지 어머니

  살아서 콩 심고 고구마 심던 자리에 묻었다

  처음 몇 년간은 봄꽃 여름꽃 가을꽃 심어놓고

  사철 푸른 동백나무도 심어 공원 나들이하듯 찾기도 했다

 

  몇 해 전 형제들 의논 끝에

  두 분 유골을 화장해서 거기 뿌리기로 했다

  우리 다 죽고 나면 산중  밭을 누가 찾아오겠냐면서

 

  손에 잠시 얹혔던 골분은 저항 없이 빠져나갔다

  서로들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으려고 입을 꾹 다물었고

  어디에 닿는지 보지 않으려고 눈을 질끈 감았다

  종잡을 수 없이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다

 

  무게도 없이 빛깔도 없이 연기처럼 날아갔지만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다짐을 하듯 빌고 또 빌었다

  행여 내 몸 어딘가에 뼛가루 묻었을까 봐

  장갑 낀 손으로 탁탁 털어가면서

 

  주소 없는 슬픔이 먼지처럼 둥둥 떠다녔다

    -전문(p. 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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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독한 설득

 

 

  고양이가 중앙선을 베고 모로 누워 있었다

 

  까마귀 몇 마리 푸르르 날았다가 앉고

 

  다시 날았다가 앉고

 

  깨워서 반드시 데려가야겠다고

 

  내려앉아 설득하고 또 그러곤 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쉽게 돌아눕지 않았고

 

  그들도 쉽게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설득이 끝났는지

 

  고양이도 까마귀도 없어지고

 

  핏자국만 납득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전문(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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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지독한 설득』에서/ 2023. 10. 20. <애지> 펴냄

 * 진효정陳效晸/  경남 하동 출생, 2014년『시와 경계』로 등단, 시집『일곱 번째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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