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散骨 외 1편
진효정
그날의 기막힌 슬픔을 일러바칠 데가 없다
내 아버지 어머니
살아서 콩 심고 고구마 심던 자리에 묻었다
처음 몇 년간은 봄꽃 여름꽃 가을꽃 심어놓고
사철 푸른 동백나무도 심어 공원 나들이하듯 찾기도 했다
몇 해 전 형제들 의논 끝에
두 분 유골을 화장해서 거기 뿌리기로 했다
우리 다 죽고 나면 산중 밭을 누가 찾아오겠냐면서
손에 잠시 얹혔던 골분은 저항 없이 빠져나갔다
서로들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으려고 입을 꾹 다물었고
어디에 닿는지 보지 않으려고 눈을 질끈 감았다
종잡을 수 없이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다
무게도 없이 빛깔도 없이 연기처럼 날아갔지만
좋은 곳으로 가시라고 다짐을 하듯 빌고 또 빌었다
행여 내 몸 어딘가에 뼛가루 묻었을까 봐
장갑 낀 손으로 탁탁 털어가면서
주소 없는 슬픔이 먼지처럼 둥둥 떠다녔다
-전문(p. 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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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설득
고양이가 중앙선을 베고 모로 누워 있었다
까마귀 몇 마리 푸르르 날았다가 앉고
다시 날았다가 앉고
깨워서 반드시 데려가야겠다고
내려앉아 설득하고 또 그러곤 했다
하지만 고양이는 쉽게 돌아눕지 않았고
그들도 쉽게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설득이 끝났는지
고양이도 까마귀도 없어지고
핏자국만 납득하지 못한 채 남아 있었다
-전문(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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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지독한 설득』에서/ 2023. 10. 20. <애지> 펴냄
* 진효정陳效晸/ 경남 하동 출생, 2014년『시와 경계』로 등단, 시집『일곱 번째 꽃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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