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월 외 1편
송미선
툭 떨어뜨린 팔이 시계추처럼 흔들리다가
스르륵 멈춘다
버팀목 없이 외발로 서서
고삐를 풀었다 다시 조이며
살아내는 것 이외는 모두 부업이다
내일은 내일에 맡겨두라고 말하는 이월은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는 도둑고양이처럼 몸피를 최대한 줄이고
두루마리처럼 말려 싱크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이월
겨울눈에게 곁은 내주고
조금씩 독해지는 허물을 달래며
하루 남은 달력에 물을 준다
영구치가 두어 개 모자라는 이월의 끄트머리
나를 솟대에 걸어두기 좋은
검은 눈이 내릴 것 같은 이월 마지막 날 저녁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전문(p. 61)
----------------------
이따금 기별
어쩌면, 이라는 말이 음역을 높였다
골목으로 달아나는 맥놀이를 좇다가 소나기를 만났다 처마 아래로 숨어든다 발등으로 튀어 오르는 빗방울을 비껴 까치발로 반걸음 물러선다 사자머리 대문 손잡이가 등을 물어 당긴다 무릎이 젖는 것을 기별이라 한다면 발끝을 빗줄기 속으로 힘껏 뻗는 것을 무엇이라 할까 얼굴은 빗물에 범벅이 되어 붉은 눈자위는 오히려 안전하다 멀어지는 발자국소리를 거꾸로 세며 발끝으로 빗줄기를 튕긴다
주먹이 풀리지 않아 악수를 청하지 못했다
웅크려진 등은 골목을 꺾어 사라진다 두 눈을 감은 채 확률을 무시하고 주사위를 던진다 울리지 않는 전화벨 대신 삼 분 간격으로 알람을 설정한다 스러져가는 휘파람으로 오랫동안 손톱을 만지작거린다
환절기마다 살갗이 두꺼워진다
계절은 우산 쓴 사람들 사이로 지나간다
-전문(p. 23)
---------------------------
* 시집 『이따금 기별』에서/ 2023. 9. 26. <상상인> 펴냄
* 송미선/ 경남 김해 출생, 2011년『시와사상』으로 등단, 시집『다정하지 않은하루』『그림자를 함께 사용했다』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득 타인 외 1편/ 송병호 (0) | 2023.10.31 |
---|---|
낙서로만 읽을 수 없는 낙서/ 송병호 (0) | 2023.10.31 |
기억나? 거기/ 송미선 (0) | 2023.10.30 |
어느 허무주의자의 죽음 외 1편/ 전기철 (0) | 2023.10.29 |
박쥐/ 전기철 (0) | 2023.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