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문득 타인 외 1편/ 송병호

검지 정숙자 2023. 10. 31. 01:54

 

    문득 타인 외 1편

 

    송병호

 

 

  벚나무 옹이에 발톱이 낀 쓰름매미

  쓰를 쓰름 서럽게도 운다

 

  긴 장마에 여름 같지 않은 여름

  연주회는 이제 시작인데

  입추지절 헐렁한 객석은 표정이 없다

 

  칠 년 동안 도달한 외계는 낯선 섬

  그도 고작 두어 달 남짓, 서럽겠다 

  

  나는 어느 때는 혼자였다

  소리 내 울 때도 있었다

 

  느낌이란 볼 수 없어도 보인다

  바위 같은 중심이 기울 때

  하늘 같던 우리가 한순간에 무너질 때

 

  자존심이 막장을 칠 때

     -전문(p. 75)  

 

 

   ---------------

     위안

 

 

  현실이 가정假定을 지배하는 동안 잃어버린 발자국의 목록을 쫓고 있다 우연히 마주친 눈맞춤처럼 곧 잊히고 마는 기억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투명  

 

  아침을 배달한 햇볕은 닫히고 감정이 실린 분할을 둘로 셋으로 나눈 나를 지우려 해도 낱장을 뒤집어보는 것처럼 내가 타인으로 여겨질 때가 있다 

 

  나는 무엇으로 넉넉할까

 

  섬은 많은데 어디에 기대야 할지

  달과 별과 시, 그리고 솔로몬의 잠언도

  위로 되지 못했다

 

  가령 무제의 입장에서

  거미줄에 배꼽이 걸린 이슬도 기댈 곳이 있는데

  영원이나 무한은 끝이 있을까

  있을 거야 있어야 하고

 

  할 수 없어서라도

      -전문(p. 23)  

 

 -----------------------------

 시집 『가령 무제의 입장에서』 中/ 2023. 10. 17. <상상인> 펴냄

 * 송병호2018년『예술세계』로 시 부문 & 2019년⟪국민일보⟫ 신춘문예 (신앙)시 당선 & 2020년『문학예술』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궁핍의 자유』『환유의 법칙』『괄호는 다음을 예약한다』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칸나/ 진효정  (0) 2023.11.05
산골(散骨) 외 1편/ 진효정  (0) 2023.11.05
낙서로만 읽을 수 없는 낙서/ 송병호  (0) 2023.10.31
이월 외 1편/ 송미선  (0) 2023.10.30
기억나? 거기/ 송미선  (0) 2023.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