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흔들리며 피는 집
하호인
자두꽃 핀 골목길 돌아들면 그리운 빈집
서까래는 기울고 벽이 허물어지면서
순한 두 눈만 껌벅이는 게으른 소처럼
열린 봉창으로 바깥만 내다보고 있다
손대지 못하고 미루던 일들로
뼈만 남은 집
구석구석을 쓰다듬는 바람
파킨슨병을 앓던 부실한 다리로 오르내릴 때
흔들리는 몸을 단단하게 지지하던 툇마루가
어머니의 기억과 함께 부스러지고 있다
흩어지는 것들은 어디에서고
다시 내려앉아 뿌리내리기 마련일까
썩은 짚더미 속에서
굼벵이는 날아오를 뜨거운 여름을 굴리고
가꾸는 손길이 끊긴 텃밭에는
바람이 제멋대로 파종한 머위와 부추꽃이 하얗다
민들레는 다시 떠나보낼 채비를 하고 있다
빈집의 나이를 좇아가는 나는
고요한 해거름에 무엇으로도 붙들 수 없어
비워야 할 것들을 손가락으로 가만히 헤아리고 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위의 시는 시인이 예전에 살던 집이 "서까래는 기울고 벽이 허물어지면서" "뼈만 남은 집"이 되어버린 상황에 대해 말해준다. 그런데 '빈집'은 기억의 속성을 상기시킨다. 기억은 빈집의 빈 공간처럼 현재에 구멍을 뚫는 동시에 그 구멍을 과거로 채워나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위의 시에서 시인이 지금 눈앞에 드러나 있는 저 빈집을 바라보면서, 그 빈 공간을 "어머니의 기억"으로 채우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기억은 결코 현재의 구멍을 완전히 채우진 못한다. 기억은 "부스러지"는 것이어서 "무엇으로도 붙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시간의 흐름 속에서 부스러지며 사라지는 속성을 가진 기억은 흔적을 남긴다. '싱건지 항아리' 속의 살얼음처럼 결국 녹아 없어질 테지만, 지문 흔적 은 가시화되는 것처럼. 사라지면서 가시화외는 기억의 흔적. (p. 시 26-27/ 론 134-135) (이성혁/ 문학평론가)
------------------------
* 첫 시집 『이 비 그치고 햇살 돋으면』에서/ 2023. 9. 18. <상상인> 펴냄
* 하호인/ 전남 광주 출생, 2018년 『시에』로 등단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시차/ 박일만 (0) | 2023.10.19 |
---|---|
맥문동을 끓이는 오후 외 1편/ 하호인 (0) | 2023.10.18 |
아직도 모르겠니 외 1편/ 전영미 (0) | 2023.10.16 |
자화상/ 전영미 (0) | 2023.10.16 |
비상 외 1편/ 나채형 (0) | 2023.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