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자화상
전영미
거울아 거울아
너의 가장 깊은 곳을 보여줘
미소와 울음을 번갈아 만들어내는 나 말고
수은으로 덧칠하기 전 네 얼굴
사람들이 벗어두고 간 얼굴들을 긁어내면
잘린 내면과 뒷면들이 겹쳐져 있고
순간의 표정들과 전달할 수 없는 기분들이 가득하지
그런 것들이 쌓일수록 네 얼굴은 멀어지고
너의 깊은 곳은 더 내려앉는다
거울에 손을 대면
밀어내는 다른 손이 있다
수은이 벗겨진 거울, 아니 유리는
중얼대는 내 얼굴을 투과한다
깊숙이 찔러 넣는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수은으로 덧칠"했을 뿐인 거울에 한시적으로 맺히는 파편적인 이미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자화상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거울 앞을 떠나 표정과 기분이 수시로 바뀌는 얼굴 모두를 자화상이라고 지정할 만큼 번잡한 이미지들을 우리는 소유하고 있지 않다. 거울 뒷면의 수은이 지배하는 화학적 매커니즘에 따라 파편적으로 자화상이 결정된다는 전제를 무시해야만 가장 흡족할 만한, 그러나 판에 박힌 듯한 자화상 하나를 얻을 수 있다. 자화상을 선택하는 기준이 미메시스를 넘어 이상화되었을 때 스스로에게 최상의 이미지를 안간다는 얘기다. 그런 이유로 화자는 숱한 "사람들이 벗어두고 간 얼굴"뿐만 아니라 순간의 표정과 기분들까지도 수은에 부착되어 있다고 보고 거울 뒷면의 수은을 긁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우리는 이 한 편의 시를 이미지가 지배하는 이 세계의 자화상들을 향한 모종의 중얼거림으로 들어도 좋을 것이다. 수은을 펴 바른 거울 앞으로 유인되었던 나르시시즘의 중독성을 과감하게 벗겨내면서 거울의 민낯을 보려는 시도로 말이다. 거울 앞에서 기분을 연기하며 표정을 지어 보이는 인간의 연극적인 행위. 그러나 거울 앞을 벗어나면 달라지는 기분과 표정. 나르시시즘을 파기하는 시인의 사유가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의 생각 꾸러미에서 풀려나오는 이야기처럼 천진스럽고 장난스럽기까지 하다. (p. 시 82/ 론 112-113) (김효숙/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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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시집 『아직 시작되지 않은 오래된 이야기』에서/ 2023. 9. 25. <문학의전당> 펴냄
* 전영미/ 경북 대구 출생, 2015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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