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그사이 지나간 것/ 김지율

검지 정숙자 2023. 9. 28. 02:12

 

    그사이 지나간 것

 

     김지율

 

 

  이게 다 살구씨 때문이야

  살구를 먹고 살구씨를 심으면

  하나의 살구에서 죽고 하나의 살구에서 다시 태어나고

 

  임대문의 현수막이 오후 내내 펄럭인다

 

  어제의얼굴과오늘의얼굴과내일의얼굴들은모두살구를가졌을까

 

  살구를 통째로 냄비에 넣고 졸인다

  아니야 실은 아름다운 문장을 기다리는 중이야

  동전파스를 붙인 늑골을 으스스 부수고 나온

 

  아무런 확신도 불가능도 없는 오후

  그래 이건 사이즈가 너무 크다

  그러니까 살구는 리얼리티가 부족하다는 말

  냄비에는 냄비보다 더 큰 살구가 언제나 있고

 

  누군가 있던 자리에

  살구씨를 묻고 달팽이를 묻고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누군가가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간다

     -전문(p. 6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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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P. S』 2023년-가을(3)호 <P. S 신작시> 에서

  * 김지율/ 2009년『시사사』로 등단, 시집『내 이름은 구운몽』『우리는 날마다 더 아름다워져야 한다』대담집『침묵』, 에세이집『아직 돌아오지 않은 것들』, 저서『한국 현대시의 근대성과 미적 부정성』『문학의 헤테로토피아는 어떻게 기억되는가』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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