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은행나무 외 1편/ 김정수

검지 정숙자 2023. 7. 16. 02:51

    

    은행나무 외 1편

 

    김정수

 

 

  통째 물감통인 저 나무

  파랑과 노랑을 황금비율로 섞어

  봄을 만들고 쉽게 묽어지지 않는

  하늘을 덧칠해 바람을 흔들고

  색과 상이 섞여 뭉치지 않도록

  소낙비 쏟아져도 흘러넘치지 않도록

  두 손으로 고이 균형을 맞추고

  가지의 미간에 열매를 부풀리고

  초저녁 달빛에 다가온 두 그림자에

  저녁놀 스민 빨강을 쏟아버리고

  새벽 미명에 파랑을 다 풀어버리고

  마당 건너 나란히 노랗게 물들어

  가을을 낳았을 예정이다 가으내

  뒷산 헤집어 빨강과 노랑과

  파랑을 채집했으리라

  첫눈 내리던 새 울음소리로

  알록달록 물감 밴 손으로 깨끗이 씻고

     -전문(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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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지

 

 

  시내에 나간 아내가

  무료로 나눠준다며

  무궁화 묘목 열 그루를 들고 왔다

 

  벗겨지지 않도록

  새끼줄로 얼기설기 동여맨

  흙신발을 신고 있었다

 

  낯선 사람 따라가면 안 된다는데

 

  어린 데도

  용케

  울지 않고 잘 따라왔다

 

  혼자라면 오다가 버려졌거나

  누군가에게 건네졌거나

  말라 죽었을지도 모른다

 

  삽을 챙겨

  아이들과 뒷산에 올라

  외롭지 않은 간격으로 심고는

  발로 꾹꾹 눌러주었다

 

  간밤에  비 내리는 소리 들려왔다

    -전문(p. 4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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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사과의 잠』에서/ 2023. 6. 30. <청색종이> 펴냄

  * 김정수/ 1990년『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홀연, 선잠』『하늘로 가는 혀』『서랍 속의 사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