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제국
꿈이라는 텍스트
허정애
1
창고 문을 여니 바닥에 메뚜기 떼가 빼곡하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한 걸음씩 내딛는데 뭔가에 몰두한 그들은 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벽을 따라 줄지은 서가에서 자루가 긴 연장 하나를 집어들었는데 도무지 쓰임새를 알 수 없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지 막연해 돌아보니, 돌연 눈 덮인 벌판에 맨발로 내가 서 있다. 여기가 밖인지 안인지, 눈이 닿는 곳마다 열린 문이다.
2
한아름 꽃다발을 든 사람 뒤로 몸이 날렵한 대형견 두 마리가 따라가고 있다. 날은 어스름하고 몇 채의 집이 보이지만 불빛 없는 마을이 기괴하다. 나는 길 끝까지 가야 하는데, 꽃을 든 사람 뒤를 따라가도 될는지 어떨는지 걸음을 떼지 못한다. 움직이지 않는 것들이 완벽하게 어두워졌다.
3
밖이 소란스러워 나와 보니, 차도와 인도에 문어들이 널브러져 있고 사방이 검은 얼룩이다. 사람들이 소방호스를 연결하느라, 씻어내느라, 부산하다. 눈을 부릅뜬 내가 먼저 원인을 알아봐야 한다고 말리지만,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모든 것이 하수구로 쓸려가고 거리는 예전처럼 깨끗해졌다. 고인 물이 파문을 그쳤는데, 하얀 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였다가 흩어졌다가를 반복했다.
-전문-
해설> 한 문장: 허정애 시인이 꿈이라는 텍스트에서 채취한 이미지들과 장면은 시인 자신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제국 심혼의 나라에서 가져왔다. 상기 이미지들을 동원한 꿈의 플롯은 시인의 소명 '통과의례적 제의'가 들어있다. 융의 관점에서는 집단무의식 신화적 동기도 들어있을 수 있다. 필자는 꿈의 플롯에 등장한 이미지들 "메뚜기 떼" "자루가 긴 연장 하나" "한아름 꽃다발을 든 사람" "몸이 날렵한 대형견 두 마리" "인도에 문어들이 널브러져 있고" "하얀 재복을 입은 사람들"의 상징 표현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 이미지들은 심혼이 말하고자 하는 전이와 치환을 거친 욕망의 결여 상징의 배후 주체라고 가정해 볼 수 있다.
정신분석가들은 이 상징들이 현실에서 어떤 정신적 가치를 보상하는지에 관심이 있겠지만 필자는 이상한 의미를 포함한 이미지들의 살아있는 긴장을 주목하고자 한다. 긴장의 시는 의미의 긴장을 포함하고 긴장이 없는 시는 기독교적일지라도 죽은 의미의 시가 되기 때문. 「이상한 제국 꿈이라는 텍스트」의 시는 화자가 처한 상황의 '이상한 감정'이 시적 긴장의 원천이다. 필자가 위에 거론한 이미지들은 시인의 황량한 심혼 마치 평행우주 같은 낯선 공간에 처한 심혼 의 감정을 드러낸다. 감정의 긴장은 허정애 시인이 동원한 이상한 이미지들을 추락에서 구해 목적지를 향해 흘러가게 한다. 시인에게 상처를 남긴 깊은 감정으로서의 꿈은 시인의 심혼이 일상의 페르소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긴급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 감정 에너지의 변용 환상 이미지가 시편 전체를 관통하기에 프로이드와 라캉의 해석을 거치지 않더라도 독자는 자발적으로 시적 긴장에 참여할 수 있다. (p. 시 80-81/ 론 121-122) (김백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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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포레의 비가를 듣는 밤』에서/ 2023. 5. 22. <예술가> 펴냄
* 허정애/ 1999년 『문예사조』로 등단, 시집『신의 아이들은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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