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지금은 코스모스가 흔들리는 계절/ 조성례

검지 정숙자 2023. 6. 2. 01:45

 

    지금은 코스모스가 흔들리는 계절

 

    조성례

 

 

  어느 때부턴가 명아주 대는

  노모의 중심이 되었다

 

  제 키를 키우면서 마디마디 저장해 놓은 뚝심으로

  그녀의 손가락 마디처럼 울툭불툭 솟아오른

  그 마디가

  몇 번째인가 굳어지면서

  노모의 손바닥으로 옮겨진 지팡이는

  그녀의 등불이 되었다

  바람이 불면 등불도 노모도 흔들린다

  흔들리는 그림자는 몇 번이고 땅바닥을 두드리고

  그 소리는 마치

  허기진 고양이의 신음 같다

 

  평생 땅을 파는 호미질이 숭고한 종교였던 그녀

  파낸 흙더미가 늘어날수록

  굵어지는 손가락 마디는

  명아주의 성장점과 함께 창상 외아들의 성장점이기도 했다

 

  가느다란 목으로 물동이를 일 때

  그녀는 코스모스 꽃대만큼이나 흔들렸으나

  기어이 허리를 곧추세우곤 했다

 

  질긴 마디가 굵어질수록 속이 비워지는 노모

  지팡이에 의지해 세 발로 걷는다

  휘청하는 눈길과 교신하는 지팡이는

  이미 죽음을 담고 있는 나무가 아니라

  생명이다

 

  노모의 주어이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앤디 워홀(Andy Warhol)이 '예술은 선택된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대중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라고 기술하고 있듯이 화자는 바로 소수가 아닌 대중의 깊이 잠재된 서정의 끈을 불러내어 따뜻한 가족애와 전통적 부성과 모성에 대하여 독자 앞에 회화적인 시어들로 펼쳐 놓는다. 가족은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이며 때로는 자신의 성장을 견인하는 원천적인 원동력이기도 하다.

  

  명아주 대를 키워 만든 지팡이는 "노모의 중심"이 되고 "등불"이 될 때 "그녀의 손마디처럼 울툭불툭 솟아오른/ 그 마디"는 불쑥불쑥 튀어나오며 시인을 흔드는 강력한 서정일 것이다. "가느다란 목으로 물동이를 일 때" "코스모스 꽃대 만큼이나 흔들렸을" 깊이 있는 사물과 현상에 대한 시인의 시선을 남다르다.

 

  조성례 시인의 시는 과거가 현재에 함께 실존하며 현재에서 추억을 불러내어 한땀 한땀 뜨개질하듯 차분하게 그려낸다. 가족을 기본으로 한 사랑과 고통에 대하여 높은 공감을 지니고 이를 자연과 사물에 대한 감정이입으로 맑고도 옅은 수채화로 그려내고 있다./ 예술의 정점은 서로 소통이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림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고, 문학을 노래로 부르듯 "저만치 물러나 앉은 푸른 날의" 추억을 불러내어 그림으로 그려내는 조성례 시인을 응원한다. (p. 시 174-75/ 론 129 · 132 · 133) (문정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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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까치발을 세우는 것들에 말한다』에서/ 2023. 5. 30. <시산맥사> 펴냄  

  * 조성례/ 2015년 계간 『애지』로 등단, 시집『가을을 수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