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제1회 시마청소년작품상_최우수상> 수상 작품
작은 창문
안선용/ 고등학교 3학년
하나요양병원 202호실
그녀가 밤을 닫고 해를 열고 있다
밖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힘,
작은 창문의 일일 것이다
빈 병실에 그녀가 늘 쓰고 지우는 창문으로
두꺼운 전화번호부의 한 면을 베껴 적다 보면
TV 속 검은 화면에 응답하지 않은 미수신
볼펜 심 끝자락에 침 묻히듯
창문에 비친 그녀 눈엔 백야가 껴 있다
수척해진 뼈마디에 꽂힌 포도당
링거를 타고 오래된 번호가 줄줄이
유일하게 외울 수 있는 암호였지만
부를 사람 없을 텐데
침침한 눈으로
바뀌지 않는 슬픔을 천천히 누르듯
그녀는 구멍 난 양말을 더듬으며
거실 소파에 앉아
바느질하던 어느 아침을 떠올린다
모든 걸 잊기 위해
모두가 모인 밥상에서
남편이 출근길에 색다른 양말을 뒤집어 신고
그녀 손에서 소금이 몇 스푼 가량 더 들어가고
투정 없이 창문으로 들어오던 찬바람 같던 아들
이제는 반가웠던 아침이 지워지고 있다
그녀가 오래도록 침을 묻히며
미처 지우지 못한 잉크가 기억 속에 번지고
생의 마침표를 찍고 있을 것이다
1인실만 한 창문에 남은 하루였을지라도
늘 밖과 안을 서성이는 그녀에게
맹맹해진 코를 괜스레 훌쩍이듯
가까이 있지 않더라도
아주 가까이 있던 걱정이 있다
-전문(p. 213-214)
* 예심위원: 박수빈(시인, 문학평론가), 김대현(문학평론가)
* 본심위원: 나태주(시인, 공주풀꽃문학관 관장), 이은봉(시인, 대전문학관 관장), 유수진(시인, 시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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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마詩魔』 2022-겨울(14)호 <제1회 시마청소년작품상_최우수상/ 수상 작품>에서
* 안선용/ 안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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