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작은 창문/ 안선용(고등학교 3학년)

검지 정숙자 2023. 5. 7. 02:51

<2022, 제1회 시마청소년작품상_최우수상> 수상 작품

 

    작은 창문

 

     안선용/ 고등학교 3학년

 

 

  하나요양병원 202호실

  그녀가 밤을 닫고 해를 열고 있다

  밖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힘,

  작은 창문의 일일 것이다

 

  빈 병실에 그녀가 늘 쓰고 지우는 창문으로

  두꺼운 전화번호부의 한 면을 베껴 적다 보면

  TV 속 검은 화면에 응답하지 않은 미수신

  볼펜 심 끝자락에 침 묻히듯

  창문에 비친 그녀 눈엔 백야가 껴 있다

 

  수척해진 뼈마디에 꽂힌 포도당

  링거를 타고 오래된 번호가 줄줄이

  유일하게 외울 수 있는 암호였지만

  부를 사람 없을 텐데

 

  침침한 눈으로

  바뀌지 않는 슬픔을 천천히 누르듯

  그녀는 구멍 난 양말을 더듬으며

  거실 소파에 앉아

  바느질하던 어느 아침을 떠올린다

 

  모든 걸 잊기 위해

  모두가 모인 밥상에서

  남편이 출근길에 색다른 양말을 뒤집어 신고

  그녀 손에서 소금이 몇 스푼 가량 더 들어가고

  투정 없이 창문으로 들어오던 찬바람 같던 아들

  이제는 반가웠던 아침이 지워지고 있다

 

  그녀가 오래도록 침을 묻히며

  미처 지우지 못한 잉크가 기억 속에 번지고

  생의 마침표를 찍고 있을 것이다

 

  1인실만 한 창문에 남은 하루였을지라도

  늘 밖과 안을 서성이는 그녀에게

  맹맹해진 코를 괜스레 훌쩍이듯

  가까이 있지 않더라도

  아주 가까이 있던 걱정이 있다

     -전문(p. 213-214) 

 

    * 예심위원: 박수빈(시인, 문학평론가), 김대현(문학평론가)

    * 본심위원: 나태주(시인, 공주풀꽃문학관 관장), 이은봉(시인, 대전문학관 관장), 유수진(시인, 시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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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마詩魔』 2022-겨울(14)호 <제1회 시마청소년작품상_최우수상/ 수상 작품>에서

   * 안선용/ 안양예술고등학교 문예창작과 3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