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소유정_물의 곁에서(발췌)/ 트랙B-인사관리 : 박상수

검지 정숙자 2023. 4. 23. 02:19

 

    트랙B

         인사관리

 

    박상수

 

 

  여기 사람들 아무도  믿지 마, 괴롭히는 건 아니지만 절대 잘해주는 법도 없지 그냥 두는 거야 어디가서 자기들 욕하지 않을 정도로만 달래면서, 조용하게 사람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알아? 있던 자리에 그냥 두는 거지 먼지가 앉고 시간도 느려지겠지, 그러다가 있는 줄도 없는 줄도 모르게 닳아가겠지 자기 오리 알지? 백조였나? 물 위는 고상한데 물속에서 발을 미친 듯이 휘젓잖아 근데 물속만 그러면 안 되지 물 위는 아주 날아다녀야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온 줄 알아?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을 거쳤지, 그래서 지금의 내가 된 거야, 자기는 지금 뭘 하고 있을까 여기 제일 높은 양반이 자기 같은 출신들 싫어하는 거 알아 몰라, 이상해 자격지심인가, 근데 진짜 무서운 사람들은 그 양반을 모시는 사람들이지, 티는 안 내지만 진지하게 더 열심히 움직이거든 인정받으려고, 그러면서 또 아닌 척을 해요 우리는 그런 종류의 조직이 아니다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근데 그게 위선 아니야? 자기는 어떻게 해야겠어 사실 나쁜 놈들이지 다 알고도 이렇게 굴려나가는 거니까, 자기 같은 사람들 많이 쓰면 쓸수록 코스트는 엄청 절약되지 그 덕에 우리도 먹고 사는 거긴 한데, 그걸 인정하는 사람은 없지 왜냐, 이 자리도 없어서 못 하는 사람들이 천지니까, 견디면 좋고 나가면 또 뽑으면 되고, 조용히 말없이 붙어 있는 것도 방법이지만 아휴······, 참, 지난번 소리 지른 건 미안해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야 자기가 이해해 그래서 겸사겸사 부른 거야 오해는 하지 마 이거 절대 충고 아니야 진심으로 하는 조언이야, 충고랑 조언이랑 둘 차이가 뭔지 알지? 그리고 이 방 나가면 입 닫아야 해, 특별히 자기 생각해서 이런 말도 해주는 거니까,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지?

      -전문-

 

  물의 곁에서(발췌)_소유정/ 문학평론가

  「트랙 B    인사관리」외 5편의 시를 모두 읽었을 때 떠오르는 하나의 이미지는 조용히 우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내내 울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잔잔한 목소리에 물기가 배어있는 것만 같은 이유는, 그것이 활자에까지 묻어나와 우리의 손을 축축하게 만드는 것 같은 까닭은 왜일까. 이 목소리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경유하여 주로 홀로 서 있는 시간에 이르러서야 흘러나오는데, 전자의 시간에서 머무르는 공간은 대개 '회사'이다. 이 배경은 박상수의 시에서 낯선 것이 아니다.

 

   (···略···)

 

 「트랙B    인사관리」의 경우 상사와의 면담 자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듯하지만, '나'의 목소리는 소거된 채 오직 상사의 목소리만이 시를 지배하고 있다.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야"와 같은 자기변호와 "이 방 나가면 입 닫아야" 한다는 강압적인 태도는 듣는 이에게는 "충고"도 "조언"도 아닌 말일 뿐이다. (시 p. 35-36/ 론 48 (·略·)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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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로여는세상』 2021-겨울(80)호 <집중조명/ 신작시/ 작품론 >에서 

  * 박상수/ 1974년 서울 출생, 2000년 『동서문학』으로 시 부문 2004년 『현대문학』으로 평론 부문 등단,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 『숙녀의 기분』 『오늘 같이 있어』

  * 소유정/ 문학평론가, 2018년 ⟪조선일보⟫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