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무무와 모모에 관한 에피소드 4/ 김효은

검지 정숙자 2023. 4. 22. 01:39

 

    무무와 모모에 관한 에피소드 4

 

    김효은

 

 

  무무의 역할놀이

  무무는 오늘 새로운 챕터

  대리운전 기사 역할을 연습한다

  무무는 쪼그리고 앉아 핸드폰을 줄기차게 바라본다

  취객이 그의 손님이다 손님은 왕이다

  고로 손님은 술취한 왕이다

  무무는 모모를 기다린다 왕을 기다린다

  마침내 콜이 온다

  무무는 모모를 만나기 위해 1차 목적지로 향한다

  1차 목적지는 모모가 있는 무대의 한 켠

  대리 부르셨죠 어디로 모실까요

  네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다 왔습니다

  모모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무무는 모모를 흔들어 깨운다

  현금이 없다면서 금방 돈을 가지고 나온다고 하고서는

  집에 들어가 깜깜무소식인 모모도 있고

  깊은 골목 사이로 사라져 일부러 돈을 떼먹는 괘씸한 모모도 있다

  무무는 모모가 골목 밖으로 나오기까지 밤새 기다린 적도 있다

  눈보라 속에서 하염없이 모모를 기다리는 무무의 연기는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보다는 단호했다고 평가됐다

  무대의 조명이 꺼졌다 켜지거나 켜졌다가 꺼지면

  암묵적으로 이튿날이 된다

  무무는 휴일의 무무를 연기한다

  무무는 휴무이므로 마음껏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한 무무는 왕이 되고 대리기사 모모를 부른다

  무무는 모모에게 주문한다

  저기 저 절벽 끝으로 가주세요

  저기 저 바다 보이시죠 저기 저 아래 심해 바닥에 수직으로 주차해 주세요

  아참 지름길로 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고객님 친절하고 안전하게 모시겠습니다

  그런데 고객님 오늘은 제가 운수가 좋은 날인가 봐요

  하필 오늘 고객님이 제 마지막 손님이신데 저랑 같은 방향이시네요

  모모가 무무에게 선심쓰듯 말한다

  기분이니 대리비는 절반만 내세요

  무무와 모모가 마주 보며 잠깐 동안 같은 표정을 짓는다

  모모는 핸들을 꽉 쥐고 엑셀을 힘껏 밟는다

  무무는 눈을 지긋이 감는다 목적지를 향해 차가 돌진한다

  반복되는 내비게이션의 내레이션

  무대 안인지 바깥인지 알 수 없는 곳에서

  무무와 모모는 모처럼 깊은 잠에 든다

     -전문(p. 8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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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로여는세상』 창간 20년 기념호/ 2021-겨울(80)호 <신작> 에서

  * 김효은/ 전남 목포 출생, 2004년 《광주일보》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