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수영하지 마시오 외 1편
이월란
커다란 경고문 앞에서 혼자 수영한다
혼자 하지 않은 일을 떠올리는 건 물속에서 숨을 쉬지 않는 것보다 어렵다
가슴에서 쥐 한 마리 튀어나와 벌컥 잠기는 일은 실험실에서나 일어난다고
믿어서 가벼워진 물고기는 혼자 하지 않은 일을 헤엄치듯 떠올린다
동화 속 인어공주는 늘 혼자여서 불행해지거나 행복해지는데
물살을 찢을 때마다 갈기갈기 혼자가 되는 수심의 깊이
들숨과 날숨 사이 물귀신처럼 혼자 살아낸 증거들이 맑다
중력과 부력 사이에서 떠오르는 사람
물에 대한 공포를 잊은 적이 없다
수경에 비친 바닥에서 겉과 속이 다른 얼굴이 일렁인다
삼천 미터 수심의 바다를 가졌다
발목을 잃어버리고 길어지는 손을 따라간다
물 밖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게 뻔하다
혼자가 아니어서 무서울 게 많은 세상이었다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어항에 갇힌 기분이 헤엄친다
나무의 그림자가 소복소복 물속에 잠기는 중이었다
고인 물이 썩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수초에 목이 메어 물속에서도 조갈증이 걸렸다
햇살이 물별처럼 반짝인다
내게 날개가 없다는 것을 엄만 일러주지 않았다
결핍을 알아차리는 건 도망자가 되는 것이었다
내게 지느러미가 없다는 것을 엄만 일러주지 않았다
숨을 쉬지 않아도 되는 세상은 없다
심해어처럼 투명해지는 착각에 빠진다
수압을 견딘 고통의 실루엣처럼 깊을수록 기괴하단다
같이 쉴 수 있는 숨도 세상엔 없다
이윽고 물의 정령에 물든 날개를 지느러미로 착각한
나비 한 마리, 첨벙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전문(p. 135-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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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을 잃어버렸다
-붉은 점과 핏방울이 만나 바늘이 된 이야기입니다
작고 반짝이는 것을 주머니에 넣고 싶었던 어린 마음에서 시작되었을까요
같은 방향만을 고집하던 손가락이 뾰족해지면서일까요
자라면서 가늘어질 수밖에 없는 질량불변의 법칙 때문이었을까요
시작을 알 수 없는 것들로만 가득 찬 세상이니까요
잃어버린 것만 생각하다 보면 잃어버린 것을 닮아갑니다
어딘가 찔려 본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한순간도 뛰지 않으면 허물어지는 심장을 타고난 이래
잡히지 않음이 모두 반짝이는 통증으로 수렴되는 사이
침대 위에선 악몽이 되고 맨발은 위태로워집니다
봉합되길 원하는 벌어진 곳 어디쯤
잎겨드랑이를 뚫고 오르는 바늘꽃처럼 만발해집니다
한 걸음씩 뒤로 가보아도
몇 바늘 꿰매다 놓쳐버린 상처 위에서
다시 제자리에 꽂지 못한 기억밖에 없습니다
실 끝을 잡고 끊임없이 풀어내다 보면 그 끝에 달려 있을지도 모른다고
지난 길들을 거스르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오래 찾을 수 없는 거라면 이미 몸속으로 들어갔을지도 모르죠
똑바로 서 있기가 힘든 날은 더욱 의심스러워집니다
혈관을 흘러다니다 튀어나온 순간의 진실에 찔려도 좋을
온몸이 따끔거리는 번식의 계절
보이지 않는 곳에선 물고기 한 마리 낚이고 있을까요
생리통에 몸이 구르던 어린 방바닥은 모래밭처럼 넓어집니다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주사약이나 바람이 통과하는 미로처럼
빈 술통 뚜껑을 향해 던지던 부러진 화살촉처럼
단도보다 은닉하기 좋은 암살용 무기처럼
독이라도 발린다면 대단해지는 위력이 따라다닙니다
잃어버린 것이 바늘만 아니었어도 정말 행복했을까요?
아직 오지 않은 통증은 만약이라는 약을 자꾸만 떠올립니다
잃어버린 뾰족함 꼭 그만큼씩 뭉툭해져 가고 있습니다
-전문(p. 3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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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바늘을 잃어버렸다』에서/ 2023. 4. 20. <시산맥사> 펴냄
* 이월란/ 1964년 경북 김천 출생, 1988년 도미, 2009년 계간『서시』로 등단, 유타주립대학교 비교문학과 졸업, 시집『모놀로그』『흔들리는 집』『The Reason』『오래된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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