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투어리즘
이월란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그대로인데
서로에게 바이러스가 되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가까워지다 폭발하는 생화학 무기
서로를 방역한다
어둠을 여행 중인 지구는 통째로 그라운드 제로
보이지 않는 손은 소리 없이 생체실험 중이다
실시간으로 바뀌는 숫자를 물고 비말처럼 흩어지는 햇살 아래
살처분하던 방호복들이 시신을 궤도 밖으로 옮기고 있다
독재자에게 맞선 쿠데타가 일어난 듯 냉동트럭이 실어 나른 시신들이
축구장에 쌓인다는 가짜 뉴스 같은 뉴스가 속보로 뜬다
마스크 쓴 도시의 얼굴로 사재기당한 텅 빈 진열대를 보며
오래된 신발이 산더미처럼 쌓인 잘린 머리카락이 산더미처럼 쌓인
아우슈비츠를 떠올린다면
달 표면을 닮은 텅 빈 유령도시 체르노빌을 떠올린다면
마른기침이 목에 걸렸다
빛에 눈멀어 날개를 삼킨 죄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 않는 활주로 같은 길을 따라 걷는다
킁킁 앞세운 강아지가 무증상의 길을 탐색한다
단지 비눗물에 씻겨 내려갈 뿐인 허망한 적들은
감염경로마다 성곽을 쌓는데
봉쇄된 국경 너머
자가격리를 마친 꽃들이 팡팡 터지기 시작했단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이월란에게 있어서 여성과 짐승은 서로 구분되는 지평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분리불가능한 지평에 놓여 있다. 여성과 짐승의 이미지의 겹침은 이주민 주체가 경계의 투명성에 의해 훼손된 것으로 인해 추동되어 나왔지만 단순히 그러한 이미지의 돌출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월란은 이 두 이미지가 경계성을 무화하는 주체의 서로 다른 버전의 이미지이며 여러 세대를 걸쳐서 비로소 이주자 주체 앞에 도래했음을 노래했다. 이 주체가 열어놓은 저항의 가능성은 경계의 투명성이 기반한 인간적 차원에 대한 근본적인 회상을 열어놓은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발자국에서 자신들의 거주지를 건설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지평을 인간이 잊었기에 인간은 경계를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영토에 기입해 왔다. 자연이 지닌 근원적 지점에서 인간적 차원은 이때 한계를 마주한다. (p. 시 84-85/ 론 192) (김학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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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바늘을 잃어버렸다』에서/ 2023. 4. 20. <시산맥사> 펴냄
* 이월란/ 1964년 경북 김천 출생, 1988년 도미, 2009년 계간『서시』로 등단, 유타주립대학교 비교문학과 졸업, 시집『모놀로그』『흔들리는 집』『The Reason』『오래된 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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