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오른다 외 1편
최영규
매일같이 내 속에는 자꾸 산山이 생긴다
오르고 싶다고 생각만 하면
금세 산山이 또 하나 쑥 솟아오른다
내 안은 그런 산山으로 꽉 차있다
갈곳산, 육백산, 깃대배기봉, 만월산, 운수봉······
그래서 내 안은 비좁다
비좁아져 버린 나를 위해 산山을 오른다
나를 오른다
간간이 붙어있는 표식기를 찾아가며
나의 복숭아 뼈에서
터져 나갈 것 같은 장딴지를 거쳐 무릎뼈로
무릎뼈에서 허벅지를 지나 허리로
그리고 어렵게 등뼈를 타고 올라 나의 영혼에까지
더 높고 거친 나를 찾아 오른다
기진맥진 나를 오르고 나면
내 안의 산山들은
하나씩 둘씩 작아지며 무너져 버린다
이제 나는
오르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있다
나를 비울 수 있다
-전문(p. 84)
----------------------
노란부리까마귀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눈동자는 치명治命*과도 같았다. 노란부리까마귀는 5,700미터나 되는 전진 캠프까지 올라와서도 도무지 울지 않았다. 나의 작은 몸짓에도 휙 날아올라 얼어붙은 고산의 하늘을 깨뜨리며 작은 점으로 사라지곤 했다. 고산지대엔 어울리지 않던, 눈물이 할 말을 움켜쥐고 있던 눈빛. 어쩌면 서로 다른 몸을 얻어 입고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두려움이 빈 배낭을 끌어안고 선잠에 빠지기도 했다.
살아서 맞는 새벽. 날씨를 살피려 텐트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노란부리까마귀들 바위 위에 앉아 일제히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상의 만년설! 나는 없는 길을 찾아 가야 하는 저들의 생각과 기어이 마주치고 말았다.
-전문(p. 41)
* 치명治命: 운명할 무렵에 맑은 정신으로 하는 유언
-----------------------
* 산악시집 『설산 아래에 서서』에서/ 2022. 12. 26. <리토피아> 펴냄
* 최영규/ 1957년 강원 강릉 출생,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아침시집』『나를 오른다』『크레바스』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로켓 배송 외 1편/ 이동우 (0) | 2023.03.30 |
---|---|
꿰맨 자국/ 이동우 (0) | 2023.03.30 |
동행/ 최영규 (0) | 2023.03.27 |
봄의 페이지는 얼마나 될까 외 1편/ 원춘옥 (0) | 2023.03.26 |
할 말은 많으나 이만 줄입니다/ 원춘옥 (0) | 2023.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