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최미경
남편이 어젯밤 꿈에서
장인어른을 만났다고 했다
결혼하기 8년 전에 아빠는 세상을 등졌기에
남편은 한 번도 장인어른을 이승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
꿈에 나온 사람이 어떻게 장인어른인 줄 알았냐고 하자
사진에서 본 적 있다며 술이 덜 깼는지 꿈이 덜 깼는지
물을 벌컥 마셨다
나는 남편이 꿈에서 만난 장인어른을 만나 볼 수가 없기에
남편의 꿈속 장인어른이 그의 진짜 장인어른인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이야 사진으로 한두 번 봐서 장인어른을 알아보았다 쳐도
아빠는 어떻게 자기 사위인지 알아보았을까
혹시 그곳에 간 이후 간간이
나 사는 꼴 내려보고 있었던 걸까
그렇게 20년 넘게 지켜보다 이건 아니다 싶어
꿈길을 헤집고 뒤져 남편을 찾아왔던 걸까
일면식도 없는 사위를 꿈에서 만나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걸까
어떤 마음으로 사위를 마주했던 것일까
물어보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닌데
어젯밤 남편과 괜히 싸웠다 싶다
-전문(p.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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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 2022-겨울(27)호 <신작시> 에서
* 최미경/ 2004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저녁 7시에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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