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
김수우
쓰레기통에서 날아오른 검은 비닐의 춤처럼
자유를 찾아다니는 화살처럼
최초의 얼굴이 도착했다 가난을 업고 온 커다란 고요
바지자락에 딸려온 백악기 도꼬마리 씨앗이
먼 길을 보여준다
자기장 밖을 사유하던 그는
늑대와 놀던 시절을 지나
청동방울에 귀 기울이던 마을을 지나
이젠 당신의 가난을 사유한다
영도 산복도로 플라스틱 텃밭
이끼를 먹고 살던 시베리아 순록이 돌아본다
봉래산 할매바위가 빈집의 안부를 물을 때마다
사막이 된 영혼이 돌아오고
바다가 된 영원이 글썽이고
산맥이 된 두개골이 퍼덕인다
뒤적일 적마다 혓바늘과 눈알이 튀어나오는 바람의 일기장
늙은 미래도 어린 과거도
서로 낙엽이 되었다가 서로를 다시 낳아준다
당신을 사유하던 모든 부활은
딱 당신의 키만큼 날아올랐다 내려앉는다
참새는 구름을 의심하지 않아
들복숭은 눈물을 시험하지 않아
텃밭엔 가난해야 할 이유들이 뚜벅뚜벅 피어나는구나
몇 년 굶은 예언자가 절대 팔지 않는 고독, 저 왕관들
태어났든 태어나지 않았든 길이 멀든 가깝든 분자든 원자든
가난은
수천수만 겹으로 되어 있다
비옥한 고요로 되어 있다
스스로 죽고 스스로 깨어나는 허공, 척추도 없이
당신을 다시 업는다
-전문(p. 1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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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간 시 전문지 『사이펀』 2022-겨울(27)호 <부산의 시인을 만나다/ 시집 속 대표시> 에서
* 김수우/ 부산 출생, 1995년 『시와시학』으로 등단, 시집『당신의 옹이에 옷을 건다』『붉은 사하라』『젯밥과 화분』『몰락경전』『뿌리주의자』(2021.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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