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크리넥스 티슈/ 정성희

검지 정숙자 2022. 11. 29. 02:39

 

    크리넥스 티슈

 

    정성희

 

 

  각티슈 두 장이

  오월 햇살로 눈부신

  그늘 하나 없는 심심한 공터를 뒹굴고 있다

  마치 사랑놀음하듯 붙었다 떨어졌다

  한 몸 되어 한 방향으로 달아나듯

  낮게 날다 멈추었다간 또 만나 함께 뒹굴고 결국은

  바람에 떠밀려 바람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면밀히 지켜보니

  우리네 삶이 얼비친다 그러하기에

  떠돌다 어느 한 계기로 가시에 걸려 혹은

  양지바른 언덕에 닿아 자리 잡게 될 때까지

  겹겹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혼자보다는 이왕이면 둘이 한 몸으로 엉겨

  활발하게 사랑하며 넘어보라고

  주례사 읊듯 조용히 생각을 얹어보는 순간

  껑충껑충 바빠진 한 생이 내 머릿속에서

  바람의 급물살을 타고

  족보에 한 획을 그으며

  행진곡에 맞춰 먼 길 떠날 채비를 한다

  공터에 널브러져 길게 누웠던 고요가

  눈부신 하객 되어

  일제히 손뼉 치며 일어선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시인은 붙었다 떨어졌다 하는 각티슈 두 장이 마치 자기들끼리 사랑놀음을 하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시인은 이 두 장의 각티슈에 인생을 투영해봅니다. 한 몸이 되었다가 서로 어긋나기도 하고, 세파에 떠밀리듯 바람의 방향 따라 움직이다 가시에 걸리기도 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인생의 축소판으로 여겨졌기 때문이지요. 시인은 각티슈의 움직임에 인생을 빗대어 비유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유로운 연상을 펼쳐 나갑니다. 시인의 연상에 따라 이제 이 작품의 상황은 두 장의 각티슈가 수많은 하객 앞에서 한 쌍의 부부가 되어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결혼식으로 바뀝니다. 시인은 신랑과 신부를 향해 "겹겹 장애물이 앞을 막더라도" 한 몸이 아니라 둘이니 "활발하게 사랑하며 넘어보라고" 축사를 읊습니다. 급기야 시의 분위기는 행진곡이 흘러나오는 등 "바람이 급물살을 타"듯 생동감이 넘칩니다. 급히 하객으로 동원된 공터의 고요가 부부가 된 각티슈 두 장의 앞날을 축복하며 일제히 일어나 손뼉을 칩니다. 각티슈 두 장에 얹는 시인의 상상력이 시를 읽은 우리에게 흡족함과 즐거움을 안겨줍니다. 문장을 과시하거나 낭비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술술 흘러나오는 시상은 신산한 세상살이의 경험과 심미적인 능력 없이는 펼치기 어려운 연상이고 상상력이지요. (p. 시 22-23/ 론 114-115) (신상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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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사라진 말씀들』에서/ 2022. 11. 18. <문학의전당> 펴냄

  * 정성희/ 경북 영천 출생, 2005『모던포엠』으로 등단, 6인 동인지『한 그루 나무를 심다』『궁궁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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