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배를 끄는 사람들*/ 안은숙

검지 정숙자 2022. 11. 28. 00:16

 

    배를 끄는 사람들*

 

    안은숙

 

 

  배를 끄는 사람들, 물결이다

  배는 물의 방향

  키는 더 이상 풍향의 흔적이 없다

 

  물결의 낯빛엔 거칠고 투박한 바다가 묻어 있다

  백 년 전의 노동이

  색 하나 바래지 않고 이렇게 남아있다니

 

  노동의 풍경이 명작이 될 수 있다고

  백 년 동안 배를 끄는 사람들,

  액자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노동이다

 

  밧줄이 물결을 지시하고 있다

 

  뭉쳐져 이끄는 것은

  간절한 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배가 물결을 탄다

 

  물결은 울퉁불퉁한 근육을 지녔고

  왁자지껄한 선술집이 목소리를 가졌다

  구령 소리가 붙어있다

  방향이 막힌 곳과 부딪히는 또 다른 물결은 부푼다

 

  뭍으로 올라온 부분은 물의 선두가 되고

  부력이 빠진 배는 물의 위

  물의 속도가 사라진 배는 지친 노동이고 부력이다

 

  고장 난 물의 바닥을 수리하기 위해

  배를 끄는 사람들

  먼바다 물결이 얼룩처럼 보인다

 

  흔들리는 물결 위에서는

  어느 것도 고칠 수 없을 것이다

    -전문-

 

    * 일리야 레핀의 작품 - 볼가강의 배를 끄는 사람

 

  해설> 한 문장: 배의 바닥을 수리하기 위해서는 움직이는 물결에서 벗어나 배를 정지시켜야 한다. 사람들이 힘들게 배를 끈 것은 배를 수리하겠다는 "간절한 방향", 즉 공동의 목적이 설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공동의 목적을 위해 "왁자지껄한 선술집의 목소리"를 일단 거두고 "구령 소리"에 맞추어 배를 끌어 올렸다. "먼바다 물결이 얼룩처럼 보"였으니 얼룩에서 벗어나야 바닥의 수리가 가능하다. 시인의 사유의 초점은 여기에 있다. 배의 바닥을 수리하기 위해는 출렁이는 물결에서 벗어나 평탄한 육지가 필요하기에 공동의 노력을 투여하여 육지로 배를 끌어 올린 것이다. 그러므로 이 노동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 그래서 시인은 「볼가강의 배 끄는 인부들」이라는 잘 알려진 제목 대신 「볼가강의 배를 끄는 사람」이라는 제목을 사용했다. 배를 끄는 사람의 행위와 그 의미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흔들리는 물결, 번지는 얼룩 위에서는 배를 수리할 수 없다. 배를 물결에서 건져내 뭍에 두어야 움직임이 멈추고 그래야 수리할 수 있다. 그래야 얼룩을 고칠 수 있다. (p. 시 20-21/ 론 131-132) (이숭원/ 문학평론가

 

   ------------------------

  * 제7회 동주문학상 수상 시집 『정오에게 레이스 달아주기』에서/ 2022. 11. 25. <달을쏘다> 펴냄

  * 안은숙/ 서울 출생, 2005『실천문학』으로 시 부문 등단, 2017년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 시집『지나간 월요일쯤의 날씨입니다』

'시집에서 읽은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크리넥스 티슈/ 정성희  (1) 2022.11.29
붉은 골목 외 1편/ 안은숙  (0) 2022.11.28
실거베라** 외 1편/ 송진  (0) 2022.11.27
플로깅(plogging)/ 송진  (0) 2022.11.27
잠의 문 3 외 1편/ 지하선  (0) 2022.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