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정끝별

검지 정숙자 2022. 10. 15. 03:05

 

    누군가는 사랑이라 하고 

    누군가는 사랑이 아니라고 한다

 

     정끝별

 

 

  국도에 버려지는 순간에도 개는 주인을 향해 꼬리를 흔들었다 저를 버리고 떠난 주인의 차를 쫓아 천릿길을 달려 옛집을 찾아왔다 주인은 이미 떠났으나 개는 옛집 앞에 앉아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낯선 사람들이 쫓아내면 달아났다가 돌아왔다 몇 밤이 지나고 몇 달이 지났다 먹을 걸 찾아다니다 다시 돌아왔다 몇 번의 천둥과 몇 번의 세찬 비바람이 불고 몇 번의 눈이 왔다 그리고 어느 겨울, 옛집 앞에서 개는 엎드려 자는 듯이 죽었다 밤새 흰 눈이 쌓였다 봄이 오자 그 자리에 개의 네 발이 땅 위로 돋았다 천릿길을 달려왔던 발바닥에서 피가 흘렀다 붉은 꽃이 가려주었다 여름이 오자 개의 네 다리가 나무처럼 솟았다 천 일을 기다리던 슬개골에서 진물이 흘렀다 장맛비가 씻어주었다 가을이 오자 주인을 쫓던 코와 귀가 벌어지고 펼쳐지더니 마침내 떨어져 쌓였다 흰 눈이 덮어 주었다 그리고 또 어느 겨울, 옛집 근처를 지나던 주인이 눈사람처럼 솟은 땅을 보며 이건 뭐지? 우리 개를 닮았네, 혼잣말을 건네며 어루만졌을 때 그제서야 개는 귀와 코와 다리와 발과 하염없는 기다림을 땅속으로 거둬들였다 환하게 녹아내렸다

 

  늘 실패할 수밖에 없는 외곬의 믿음, 너를 향한 나의

     -전문 (p. 31)

 

  ※ 제목 끝에 [] 표시가 된 작품은 시인들이 직접 뽑은 1-2년 내의 근작 대표시입니다. 이 작품은 현대시작품상 후보작으로 검토됩니다.(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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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시』 2022-8월(392)호 <신작특집>에서

  *  정끝별/ 198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