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도리깨질/ 송봉현

검지 정숙자 2022. 9. 12. 01:05

 

    도리깨질

 

    송봉현

 

 

  햇살 눈부신 가을마당 가득히

  바싹 마른 콩대 펼쳐놓고

  도리깨 홱 홱

  푸른 하늘 휘저어 두들기면

 

  실한 콩알들이 쏟아져

  가난한 설움 지우고

  윤기 있는 알몸 뒹굴며

  누웠습니다

 

  송골송골 땀방울 맺힌 아버지

  마루 끝 걸터앉아

  긴 담뱃대 터널로 뽑아

  하얀 연기에 섞어 날려 보내는

  선비의 고뇌 맥없이 바라보던

  손 바꿈질 한 내가

 

  가슴속 가득 메운

  버릴 수 없는 가시밭 농사일 모두 모아

  필사의 힘으로 두들겨 팰 때에도

 

  콩은 토실한 살 드러내고

  풍요롭게 웃었습니다

    -전문-

 

  서문> 한 문장: "우리가 태어난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을 위해서다"라고 플라톤은 말했다. 이 시선집 『코리아르네상스』의 전편에 흐르는 것은 나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내 아버지의 나라 아니 그 아버지의 아버지 나라인 코리아가 분단과 대결을 벗고 한 몸이 되어 평화롭고 자유롭고 문화향기 드높은 나라로 나아갈 시인의 뜨거운 염원을 담고 있다. "필사의 힘으로 두들겨 팰 때에도/ 콩은 토실한 살 드러내고/ 풍요롭게 웃었습니다"는 바로 핍박과 고난과 질곡 속에서도 새 생명으로 태어나는 우리 겨레의 풋풋한 기상과 "풍요로운 웃음"을 송봉현 시인은 모국어의 제단에 바치고 있다. 이 아름답고 긴 여운의 시 정신을 보여준 송봉현 시인의 건승 건필을 빈다. (p 시 134-135/ 론 6-7) (이근배/ 시인,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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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선집 『코리아르네상스』에서/ 2021. 7. 14. <명성서림> 펴냄 

  * 송봉현/ 전남 고흥 출생, 1998년『문학공간』으로 등단, 시집 7권, 에세이집 5권, 시화문집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