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 시간
정숙자
열셋, 그때, 나는 미래를 팔아 시를 샀다
그것이 무엇인 줄도 모르고
장차 그것이 어디에 쓰일 것인지도 모르고
한 꼬투리의 의문을 품거나 영문도 모른 채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수면에 비친 하늘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러한 나는 한낱
‘시’라는 공간의 얼뜬 지느러미에 불과했으나
파고波高의 율동에 끼어 쉴 새 없이 아가미를 여닫았다
잠들 때조차 모자란 눈을 감지 못했다
여타의 인내와 고뇌와 얼핏얼핏 스치는 황홀 따위를 조각조각 전신에 이어붙이며,
언제였던가 섬 한가득 피 흐르던 밤, 나는··· 없는 발을 수초에 묻고 별들의 산란을 바라보았다. (저건 필시 달의 사유/ 부스러져나간 달의 육체와 정신일 거야) 헤아리고는 어둠의 기하학을 아스라이 이해하였다
바다에는 때로 용龍이 오르고
해적이 살고
삼각지대 곳곳에 휘돌았지만, 그는 말려들지 않았다
<미래를 팔았으니까>
<미래는 이미 시의 소유였으니까>
‘미래’의 길이와 넓이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그때로부터
반세기를 넘어온 오늘에야 checking-되는
일생!
그래, 맞아, (숙명이었겠지만)
잘했어. 그때 모두를 팔아 시를 샀던 건 잘했고말고 _
- 『현대시』 2022-6월호
▣ Little Magazine 시가마 선정 좋은 시_ 김태신/ 시인
시를 향한 노력은 기나긴 화물 기차처럼 눈앞에서 천천히 먼 길을 달려간다. 살다 보면 까닭 없이 가슴 저 밑바닥에서 뼈저리듯 아프게 달려오는 어떤 울림도 있다. 인생의 걸음에서 그때 그 우연히 펼쳐 읽은 시 한 편 때문에, 열셋, 이후의 삶을 시라는 매개에 미래를 바꾸어버린 시간의 기적을 살아온 셈이 된다. 미래의 삶, 결국 시를 안고 살아온 인생은 오로지 우주가 나에게 준 기적이 되는 것이다. (p.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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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ittle Magazine 『시 가꾸는 마을 』 2022-여름(35)호 <시가마 선정 좋은 시> 에서
* 김태신/ 1956년 경북 대구 출생, 2018년『시선』으로 등단, <시 가꾸는 마을>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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