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외일보⟫ 2023. 1. 11. |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_해설
동역학
정숙자
하나둘 우물이 사라졌다
마을과 마을에서
‘깊이’가 밀려난 것이다
우물물 고이던 시간 속에선
두레박이 내려간 만큼
물긷는 이의 이마에도 등불이 자라곤 했다
꾸준히 달이 깎이고
태양과 구름과 별들이 광속을 풀어
맑고 따뜻한 그 물맛이 하늘의 뜻임을 알게도 했다
하지만, 속도전에 뛰어든 마을과 마을에서 우물은 오래가지 못했다
노고를 담보하지 않아도 좋은 상수도가 깔리자
물 따위는 쉽게- 쉽게- 채우고 버릴 수 있는
값싼 거래로 변질/전환되었다
엔트로피의 상자가 활짝 열린 것이다
가뭄에도 희망을 지켰던 우물 속의 새
언제 스쳐도 깨끗하기만 했던 우물물 소리
그런 신뢰와 높이를 지닌,
옛사람, 무명 옷깃 어디서 다시 만날까
그리고는 우물가에 집 짓고 살까
- 『시인동네』 2020-7월호
[최형심의 시 읽는 아침] _「동역학」 해설/ 최형심 시인
"깊이"라는 단어가 언젠가부터 시대에 뒤떨어진 단어가 되었습니다. 첨단 기계문명의 시대이자 고도의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는 무언가에 천착하고 시간과 공을 들여 한 "우물"을 깊게 팔 여유를 잃었습니다. "쉽게" "채우고" "쉽게" "버릴 수 있는" "값싼 거래로" 가득 찬 세상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맑고 따뜻한" 물, "새"와 "우물물 소리", "별"을 잃었습니다. 모든 이에게 깊이를 강요하는 것은 폭력입니다. 마찬가지로, 깊이에 천착하고자 하는 이들을 그렇게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세상도 폭력적입니다. ▩ ⟪내외일보⟫ 2023.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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