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김종회_운명의 언어로 새긴 시의 힘(발췌)/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검지 정숙자 2022. 5. 12. 03:17

 

    한계령을 위한 연가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는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할레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이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전문-

 

  ▶ 운명의 언어로 새긴 시의 힘 | 문정희 시인의 시 세계(발췌) _김종회/ 문학평론가

  운명과 모험심과 연가가 한 울타리 안에서 충돌하는 격한 정념情念의 시다. 누구나 당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체험을 두고, 그것이 시가 되게 하는 절정의 순간을 포착한다. 그 뜨거운 시적 발심發心이 이 시 한 편에 편만하다. '한계령쯤'이면 굳이 한계령이 아니어도 좋다. 그러기에 '한계령寒溪嶺의 한계限界'라는 언어 비틀기도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화자는 폭설 속의 고립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하고 강렬한 도전적 모험 의지를 발산한다. 마침내 시의 말미에는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 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라는 언사에 이른다. 이러한 역발상의 시적 접근법은 이 시가 수발秀拔한 시이자 그 주인이 천생의 시인임을 증거한다. (p. 시 25-26/ 론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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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편견』 2021-겨울(20)호 <한국인이 사랑하는 시인/ 대표시/ 시세계>에서

  * 문정희/ 전남 보성 출생, 서울에서 성장, 1969년『월간문학』으로 등단, 시집『오라, 거짓 사랑아』『나는 문이다』『카르마의 바다』『응』『작가의 사랑』등, 시선집『지금 장미를 따라』외에 시극, 에세이집 등 50여 권의 저서 출판  

  * 김종회/ 경남 고성 출생, 1988년『문학사상』으로 문학평론 등단, 저서『문학과 예술혼』『문학의 거울과 저울』『영혼의 숨겨진 보화』등, 산문집『한민족 디아스포라 문학』『삶과 문학의 경계를 걷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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