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나비/ 이기성

검지 정숙자 2022. 5. 11. 13:37

<2021, 제8회 형평문학상 수상자/ 자선대표시> 中

 

    나비

 

    이기성

 

 

  나는 소년을 보았어. 그 애가 유리문을 통과하려고 애쓰는 것을. 그건 마치 막 날개를 펴려고 애쓰는 나비와 같았지. 하지만 나비라니? 지하도의 매캐한 먼지 속에서 사람들이 매일 그 애를 밟고 지나갔어. 사람들이 지나가면 납작해진 아이는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났지. 노란 작업복은 그 애의 교복이야. 그 애는 작은 가방에 은빛 숟가락을 넣어 가지고 다녔지. 그건 나비의 자존심 같은 것이라고. 그럴 때 그 애의 얼굴에 휙 지나가는 서늘한 웃음 같은 것. 사실 그건 소년의 할머니가 물려준 것이었지. 나비야, 어린 나비야, 할머니는 소년을 그렇게 불렀을지도. 지하도의 벤치는 꿈을 꾸기 좋은 곳. 그 애가 벤치에 앉아서 신문지 쪼가리를 더듬더듬 읽을 때, 그 애의 목덜미에 하얀 먼지가 내려앉는 게 보였어. 만약 내게 손이 있다면 그 애의 옷깃을 잡아당겼을 거야. 마지막에 그 애는 비명을 질렀지만, 그건 어떤 음악 소리보다 작았거나 너무 컸지. 너무 작거나 너무 큰 소리가 사람들의 귀를 촛농처럼 꽉 틀어막았어. 아아아, 유리문을 통과한 그 애는 정말 나비가 된 걸까. 검은 파도처럼 통로를 떠밀려가던 사람들 멍하게 소년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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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형평문학』 2021-3호(11.26.발행) <2021. 제8회 형평문학상 이기성/ 자선대표시>에서

  * 이기성/ 서울 출생, 1998년『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불쑥 내민 손』『타일의 모든 것』『채식주의자의 식탁』『사라진 재의 아이』『동물의 자서전』, 평론집『우리, 유쾌한 사전꾼들』『백지 위의, 손』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