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릉의 취모검
한이나
칼날 위에 머리카락을 올려놓고
입으로 불면 끊어지는
취모검, 칼 한 자루 생각한다
잡풀 무성한 마음까지도 쓰윽 슥
단칼에 벨 수 있는
이를테면 사람을, 세상을 살리는
활인검
쇳물이 되었다가 뜨겁게 열 가한 칼날이
도라지꽃으로 푸른빛을 띨 때
때려 펴고 갈아주길 무수히 반복하면
고통의 한가운데
녹슬지 않는 금강의 시간들
언젠가의 생애에 내 한 번은
대장장이 곳집의 칼이었을지도
길이 1미터 넘는, 날카롭게 날이 선
칼의 잔혹한 말을 견디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바치는 또 다른 눈부심
기묘한 아름다움의 칼들
제 마음을 무수히 베이고서야 한 마음을 얻는 칼자국들
속이 하얗게 빛나는 잘 벼린 칼의 날을 맨손으로 짚고
고요히 목숨을 건너는 하루
나는 나를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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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천지 동인 제9시집『달을 먹은 고양이가 담을 넘은 고양이에게』에서/ 2022. 3. 31. <문학의전당> 펴냄
* 한이나/ 충북 청주 출생, 1994년『현대시학』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 시작, 시집『물빛 식탁』『플로리안 카페에서 쓴 편지』『유리 자화상』『첩첩단풍 속』『능엄경 밖으로 사흘 가출』『귀여리 시집』『가끔은 조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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