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바람이 되어, 바람의 소리가 되어/ 최영규

검지 정숙자 2022. 4. 27. 02:45

 

    바람이 되어, 바람의 소리가 되어

 

    최영규

 

 

  새벽까지도 바람은 텐트를 잡아 흔든다

  정신에 섬뜩 불이 켜지고

  밤새 어둠을 밟고 올라온 새벽은 칼날처럼 선연하다

    

  고요한 함성,

  명치 끝 어디쯤에 뭉쳐 있던 불꽃인가

 

  라마제* 때 건 불경佛經 빼곡히 적은 깃발들이

  바람 앞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온몸을 뒤척이던 바람은 나를 흔들어 세우고

  낭파라를, 가브락 빙하를, 끝없는 티베트 설원을 걷는다

  내가 딛고 서 있는 여기, 이 땅의 끝

  초오유 정상 너머로까지 뜨거운 갈기를 세운다

 

  아, 거대한 빙하와 속을 알 수 없는 높고 거친 설산들

  그들 앞에 내팽개쳐진 듯

  나는 혼자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러나 가고  싶은 그곳으로

  바람이 되어,

  그 바람의 소리가 되어

    -전문-

 

 

   * 라마제(lamawp祭): 일반적으로 원정대들이 등반의 성공과 무사귀환을 산신에게 기원하는 전통적인 테배트의 불교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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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천지 동인 제9시집『달을 먹은 고양이가 담을 넘은 고양이에게』에서/ 2022. 3. 31. <문학의전당> 펴냄

  * 최영규/ 강원 강릉 출생,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아침시집』『나를 모른다』『크레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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