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하류/ 이민하

검지 정숙자 2022. 2. 15. 01:11

 

    하류

 

    이민하

 

 

  어두운 백척간두 일인실에 누워

  신은 우리를 창밖에 매달아두고 잊어버린 것 같아.

 

  줄을 끊은 새들이 흘러내리는

  유리를 닦고 닦다가 손바닥을 떨어뜨리고

 

  주워 온 인형 팔이 스무 개나 있다. 서랍 안에는

  낡은 한국어 교본도 있다.

 

  흰 입 검은 입 가르마를 타고

  고요히 복화술을 익히고

  아름다운 인체를 얻었는데

  속눈썹도 셀 수 있을 것 같은 밤인데

 

  이 밤이 신이 꾸는 악몽이라면

  우리는 헝겊 옷을 빨아 입고 조금만 더 누워 있자.

  가려운 등을 내밀고

 

  입김을 호호 불며 번갈아 태엽을 감아준다면

  믿을 수 없이 믿음에 가까워져서

 

  사람의 품속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다.

 

   ------------------

  * 『현대시』 2022-1월(385)호 <기획성/ 2010년대 후반기 한국시의 새로운 흐름_김언> 에서

  * 이민하/ 2000년『현대시』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