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류
이민하
어두운 백척간두 일인실에 누워
신은 우리를 창밖에 매달아두고 잊어버린 것 같아.
줄을 끊은 새들이 흘러내리는
유리를 닦고 닦다가 손바닥을 떨어뜨리고
주워 온 인형 팔이 스무 개나 있다. 서랍 안에는
낡은 한국어 교본도 있다.
흰 입 검은 입 가르마를 타고
고요히 복화술을 익히고
아름다운 인체를 얻었는데
속눈썹도 셀 수 있을 것 같은 밤인데
이 밤이 신이 꾸는 악몽이라면
우리는 헝겊 옷을 빨아 입고 조금만 더 누워 있자.
가려운 등을 내밀고
입김을 호호 불며 번갈아 태엽을 감아준다면
믿을 수 없이 믿음에 가까워져서
사람의 품속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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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2-1월(385)호 <기획성/ 2010년대 후반기 한국시의 새로운 흐름_김언> 에서
* 이민하/ 2000년『현대시』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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