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시인의 시

장석원_전통과 현대성, 혼돈과 자유(발췌)/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 김수영

검지 정숙자 2021. 3. 28. 02:55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김수영(1921-1968, 47세)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 테이블도 많으면

  걸린다 테이블 밑에 가로질러 놓은

  엮음대가 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은

  미제 磁器 스탠드가 울린다

 

  마루에 가도 마찬가지다 피아노 옆에 놓은

  찬장이 울린다 유리문이 울리고 그 속에 

  넣어둔 노리다케 반상 세트와 글라스가

  울린다 이따금씩 강 건너의 대포 소리가

 

  날 때도 울리지만 싱겁게 걸어갈 때

  울리고 돌아서 걸어갈 때 울리고

  의자와 의자 사이로 비집고 갈 때

  울리고 코 풀 수건을 찾으러 갈 때

 

  38선을 돌아오듯 테이블을 돌아갈 때

  걸리고 울리고 일어나도 걸리고

  앉아도 걸리고 항상 일어서야 하고 항상

  앉아야 한다 피로하지 않으면

 

  울린다 시를 쓰다 말고 코를 풀다 말고

  테이블 밑에 신경이 가고 탱크가 지나가는

  沿道의 음악을 들어야 한다 피로하지

  않으면 울린다 가만히 있어도 울린다

 

  美製 陶磁器 스탠드가 울린다

  방정맞게 울리고 돌아오라 울리고

  돌아가라 울리고 닿는다고 울리고

  안 닿는다고 울리고

 

  먼지를 꺼내는 데도 책을 꺼내는 게 아니라

  먼지를 꺼내는 데도 유리문을 열고

  육중한 유리문이 열릴 때마다 울리고

  울려지고 돌고 돌려지고

 

  닿고 닿아지고 걸리고 걸려지고

  모서리뿐인 形式뿐인 格式뿐인

  官廳을 우리집은 닮아가고 있다

  鐵條網을 우리집은 닮아가고 있다

 

  바닥이 없는 집이 되고 있다 소리만

  남은 집이 되고 있다 모서리만 남은

  돌음길만 남은 難澁한 집으로

  기꺼이 기꺼이 변해가고 있다

      -전문, 1968. 4. 23.

 

 

  전통과 현대성, 혼돈과 자유(발췌) - 장석원/ 시인

   '걸린다, 울린다' 두 동사가 시의 엔진이다. 걸리기 때문에 울리고 울리기 때문에 더 걸린다. 걸리고  울리는 현상의 원인을 찾기 어렵다. '걸리다'와 '울리다'가 인과 없이 호응한다. 일상생활 전부가 걸리고, 걸릴 때마다 전체가 울린다. 움직임으로 충만하다. '피로하다'가 의미 맥락의 부수적 흐름을 형성하지만 왜 "피로하지 않으면//울"리는지 알기 어렵다. "가만히 있어도 울린다"는 구절이 피로마저 시의 의미 맥락에서 이탈시킨다. 보이지 않는 힘이 연속적인 움직임을 불러일으킨다. 멈춰 있는 것이 없다. 움직일 때마다 걸리고, 걸릴 때마다 연신 움직임이 발생한다. 움직임뿐이다.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는데 독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의미를 파악할 수가 없다고, 의미가 있기는 있냐고, 장난 아니냐고 퉁방울처럼 툴툴댄다. 가능한 반응이다. 모든 시는 의미와 정서와 비유의 덩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의미 획득과 정서 전달과 비유 창조가 목적이 아닌 시도 분명히 있다. 「의자가 많아서 걸린다」가 그렇다. 불규칙의 경계를 돌파하면서 자유롭게 시행을 배치하는 김수영. 시의 형식과 내용을 구분하지 않고 온몸이 주형鑄型한 언술의 흐름을 의미와 무의미가 만나는 지점에서 '프리 스타일'로 풀어놓는, 힙합 전사 같은, 김수영을 목격한다. 자유를 온몸으로 실천하는 순간이 도래한다. 이것이 한국 현대시사에서 인정되었어야 할 하나의 형식 모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수영의 전체 시력을 조망할 때, 이러한 움직임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김수영은 「풀」에서 새로운 노래의 가능성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 빛나는 예지를 노래로 부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가 전통을 인식하지 못했다면, 그가 후세에게 전해 줄 사랑(새로운 전통)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혼돈이 잉태하는 자유의 양상(전통의 미래)을 그가 성취하지 못했다면, "순간이 순간을 죽이는" "현대가 현대를 죽이는" "현대의 종교는 '출발'에서 죽는 영예榮譽"(「비」)가 가능했을까. 김수영이 1968년에 죽지 않고,  「풀」 이후, 두 번째 시집을 발간했다면, 어떤 시들이 시집을 구성했을까. 한국 현대시는 그 후 어떻게 변화했을까. (p. 시 26-27/ 론 2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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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간 파란』 2021-봄(20)호 <issue/ 김수영>에서

  * 장석원/ 2002년 ⟪대한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나키스트』 『역진화의 시작』 『리듬』, 음악 에세이집 『미스틱』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