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제22회 수주문학상 수상작> 中
치齒
이동욱
호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면
물줄기는 날카로워진다
연약함을 가장하지 않는다
다시 아침
어김없이 남자는 옥상에 올라
채소에 물을 준다 채소는
스티로폼 박스에 담겨 있다 정확히
박스는 사각의 스티로폼, 하얗게
모여 있는 알이 위태롭다
옥상 아래 아이들은 잠들어 있고
언제 깨어나 울지 모른다, 시커멓게
동굴 같은 입 가득 허기를 물고 남자에게 물을지 모른다
그건, 아직, 네가 알 수 없는 일
아내는 왜 나비를 좋아했을까
남자는 채소에 물을 준다
언젠가 하얀 뿌리까지 닿을 수 있을까
자주 뽑히는 너희는 왜 이다지 순종적인가
왜 우리는 반복되는가
어서 자라라
다시 돌아오지 말아라
남자는 호스를 움켜쥔다
우리는 무례한 짐승일까
초식동물 목덜미를 파고드는 송곳니처럼
담장 위로 박혀 있는 병조각이 햇빛과 첨예하다
-전문-
* 심사위원: 손택수 안지영 이설야 이수명 황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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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 2020-9월호 <우리시의 현장_제22회 수주문학상> 에서
* 이동욱/ 1978년 포항 출생, 2007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 200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등단, 소설집 『여우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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