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에서 읽은 시

낫*/ 송재학

검지 정숙자 2020. 10. 19. 00:59

 

 

   *

 

    송재학

 

 

  가택신 성조대감**이 윤달마다 궁리하다 생산했으니 풀을 밀어서 깎는 밀낫, 나무껍질을 벗기는 깍낫, 자루가 긴 걸낫, 날을 반대로 세운 왼낫, 날이 짧은 버들낫, 갈대 따위를 휘둘러서 베는 벌낫, 날 끝이 오그라든 접낫, 대장간에서 육철을 쳐서 잘 두들긴 우멍낫 중

  옻이 잔뜩 오른 자루에 깊이 박히는 슴베의 거친 콧소리를 놀구멍에 맞춤하듯 천천히 넣어 쇠못인 낫놀로 아퀴 짓고 동그란 낫갱기가 쇠붙이를 얼싸안듯 달랠 무렵 잠깐 숨 고르며 휘어지는 덜미의 낫공치***가 반달형으로 전력 질주하는 날의 입매 덕분에 두텁고 싱싱한 날로 베고 찍는데 능하여 일찍 초식동물의 아래턱뼈로 시작한 낫들 속에서 능히 하루 한 마지기 이상의 벼를 벨 수 있어 우멍낫 또는 조선낫이기도 하니 심심파적 낫치기 후에는 내둥내 면잡이 한 숫돌로 시퍼렇게 벼린 뒤 설렘과 함께 시렁에 쟁여 놓고 세시풍속을 일일이 따라가더라

    -전문-

 

  * 단원 김홍도의 풍속도 「단야도」에서 보듯 조선낫은 무겁고 자루가 길고 진중하다. 조선낫은 나무를 찍고 곡식도 베는 다기능인데 비해, 식민지 시대 일본에서 들어온 자루가 짧고 날이 얇은 가벼운 왜낫 또는 평낫은 곡식을 베기에 편리해서 많이 사용되었다.

 

  ** 이능화의 논문조선무속고』(『개명』 19호, 1927년)에 "蓋有成造家舍之意(성조가 가사를 조성한다)했으니, 성조 즉 집을 짓는 가택신을 성조대감, 성주대감 또는 성주신이라 했다.

 

  *** 슴베, 놀구멍, 낫놀, 낫갱기, 덜미, 낫공치는 낫의 부분별 명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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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정시학』 2020-가을호 <기획특집_오늘, 그리고 내일의 산문시> 에서

 * 송재학/ 1986년 『세계의문학』으로 등단, 시집 『슬프다 풀 끗혜 이슬』 『얼음 시집』 『푸른 빛과 싸우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