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생半夏生
조정권(1949-2017, 68세)
흐르는 물살 위에서 핀 흰 꽃들
조그맣고 하얀 半夏生 꽃들.
물살이 꽃을 가꾸고
물길을 가꾸고 있다.
내가 물길을 타고 떠내려간다.
물 위에 사는
흐르는 물살,
떠내려가며
물들의 뿌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며
떠내려가며,
온 산 산새소리 다 합해놓은
저 밖의 시끄러움 夏至까지 따라가다가
환한 귀로 내다본다.
흐르는 물살 위에서 홀로 핀 흰 꽃들
흰 꽃들이
조금 열어놓은
안의 부산스러움.
취해서 깨어있는 듯
얼굴 담그다가
물 위로 귀 조금 더 열어놓다가
담아두다가 열어두다가…….
-전문-
▶ 이미지스트 조정권을 기억하며 그리워하며(발췌)_ 장석원/ 시인
유고 산문집 『청빙』의 발문에서 나는 「반하생」과 크롬에 대해 언급했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의 비등과 말할 필요가 없는 것들의 비산이 선생의 생과 시가 지닌 비극과 미학을 드러내는 것 같은 이미지, 하지의 들끓는 침묵, "하지의 반하생과 햇빛에 시인은 크롬을 입힐 것 같다. 금속이 차갑다는 말은 사실일까. 금속의 체온을 가진 시인은 몇 명이나 될까. 반하생 꽃들이 물살 위에서 심벌즈처럼 반짝인다." 어느 산문에서 나는 선생의 작시법이라고 생각했던 침묵 처단술을 말하고 싶었다. 그는 일상의 소음을 참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시의 소음 역시 견디지 못했다. 난해하고 길어서 소음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감정이 감상으로 치달아 언어를 화장 도구로 만든, 그렇고 그런 속류 서정시를 경멸했다. (……) 조정권의 시는 강건하다. 서정시이면서 서정시가 아니다. 짧은 시도 많지만 폭풍 같은 장시도 많다. 그는 '헤비 메탈'이 지니고 있는 진보와 파괴의 동시성을 인정했다. 나에게 더 가라고, 끝까지 가라고 말했다. 조정권은 고전음악의 형식과 자신의 의지를 결합시켜 시의 육체를 창조해냈다. 그에게 음악과 언어는 분리되지 않는 것이었다. 장대한 서양 고전음악 속에 거주하면서 그는 첫 번째 병을 견뎌냈다. 그때 발견한 견인불발의 의지로 그는 『산정묘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p. 6-7(시)/p. 7 (…) p.8(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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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스프리』2019-가을호 <작가조명_ 시인 조정권> 에서
* 장석원/ 2002년《대한매일》(현《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리듬』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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