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에서 읽은 시

이순꽃/ 김남권

검지 정숙자 2019. 9. 12. 02:18

 

 

    이순꽃

 

    김남권

 

 

  백목련도 자목련도 꽃 피다 물드는 때 있다

  하늘의 시간을 빌려와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별빛을 숨겨 두었지만

  손등에 팔목에 얼굴에 씨앗이 발아하고

  꽃잎이 피어나는 순간을 막을 순 없다

  그건 하늘꽃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화원에만 피어나는 꽃이다

  적어도 누군가의 가슴에서 십간십이지를

  돌려놓아야 피는 꽃이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은 때 꽃은 피어난다

  보고 싶어도 차마 볼 수 없을 때 하늘도 눈을 감는다

  하늘 꽃밭에 모종하기 전, 지상에서

  마지막 씨앗을 키워 우주를 밝히는 것이다

  심장 가득 천상의 뿌리를 내려 지상의

  몸을 거두어가는 것이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자목련도 백목련도 피다 물드는 때 있다"라는 진술을 보니 김남권의 목련 사랑은 여전한 것 같다. 아니다. 시인의 사랑은 목련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가 사랑하는 바는 지상地上의 식물만이 아닐 테다. 독자로서는 "하늘꽃"이라는 절묘한 어구에 주목해야겠다. 그것은 "천상의 화원에만 피어나는 꽃"이고 "누군가의 가슴에서 십간십이지를/ 돌려놓아야 피는 꽃"이다. '천상天上'이나 '십간십이지十干十二支'같은 어휘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하늘꽃'은 특별한 공간에서 각별한 노력을 해야만 만날 수 있는 꽃으로 이해된다. 그것은 "우주를 밝히는" 꽃으로서 "심장 가득 천상의 뿌리를 내려 지상의/ 몸을 거두어가는" 초현실적인 속성을 갖는다. "이만하면 되었다 싶을 때" 피어나는 꽃. "보고 싶어도 차마 볼 수 없을 때 하늘도 눈을 감는" 꽃을 김남권은 "이순꽃"이라 부른다. 이순耳順 곧 예순 살이라는 세월의 힘이 쌓였을 때 비로소 피어나는 꽃을 우리는 이제부터 외경해야 할지도 모르겠다.(p.134.) (권온/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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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집 『발신인이 없는 눈물을 받았다』에서/ 2019. 8. 30. <시산맥사> 펴냄

  * 김남권/ 2015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이 따뜻해서 봄이 왔습니다』『불타는 학의 날개』등, 동시집 『짜장면이 열리는 나무』『1도 모르면서』, 저서 『시낭송의 감동고나 힐링』『내 삶의 쉼표 시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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