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접바가지
최종천
신을 만나기 위해 예수라는 반투명의 존재가 있듯
눈으로 태양을 보고자 한다면 반투명의 유리가 필요
하다.
용접의 최고 온도는 5000도로서 태양의 온도와 큰 차
이가 없다.
나는 가끔 용접을 하다가 말고
바가지를 쓰고 하늘의 태양을 보곤 한다.
용접을 맨눈으로 보았다가는 눈이 멀어버린다.
신을 예수를 통하여 만나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이다.
이 반투명의 유리는 그러니까
머나먼 형이상학적 시간과 공간인 셈이다.
그 원리는 십자가와 같은 것
존재가 존재를 건너가 존재를 만난다.
물인가 하면 불이고
불인가 하면 물인 용접
물이 불을 건너가고 불이 물을 건너간다.
그 뜨거운 심연을 나는 나의 얼굴을 가리고 본다.
노동계급은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
해설> 한 문장: 최종천은 신과 인간 사이에 "예수"가 필요한 이유를, 자신의 생계인 용접 노동의 원리 속에서 발견한다. 인간이 "신을 만나기 위해 예수라는 반투명의 존재가 있어야 하듯이 ", 태양에 버금가는 5000도의 용접 온도를 견디기 위해서는 용접바가지의 "반투명의 유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투명의 유리"(존재)는 "존재가 존재를 건너가 존재를 만나"게 한다는 점에서 "십자가와 같은" 기능을 한다. 최종천은 용접 노동에 없어서는 안 될 "반투명의 유리"에서, 인간이 신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며 매개체인 "머나먼 형이상학적 시간과 공간"과, "십자가", "예수"의 역할을 읽어낸다. 최종천은 노동과 물과 불이 부딪치는 "뜨거운 심연"을 "반투명의 유리"를 통해 가까스로 보고 견디는 일이며, 따라서 "노동계급은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노동계급의 노동을 예수의 십자가에 유비하는 발상이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유비를 용접바가지의 "반투명의 유리"에서 구체적으로 발견하는 노동자의 직관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다. 이 시는 노동 현장의 가쁜 숨결과 철학적인 통찰, 종교적인 비전이 어우러져 아름답고 깊이 있는 세계를 빚어내고 있다. (김수이/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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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집 『인생은 짧고 기계는 영원하다』에서/ 2018. 6. 17. <반걸음> 펴냄
* 최종천/ 1986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함, 시집 『눈물은 푸르다』『고양이의 마술』외, 산문집 『노동과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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