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미술관
정영경
넓은 나무 잎사귀로 가려진 그 미술관 한곳에
몇 백 개의 눈알들이 멈춰 있다
(돼먹잖은 작품들이야)
험상궂은 얼굴로 들어서는 남자를 보며
얼마동안 웅크리고 있었던 것인가
저 여자는
그늘이 드리워진 하얀 얼굴빛에
남자가 칠한 덧칠자국이 굵게 그어져 있다
붓의 강도가 거칠어질수록
소스라치는 비명소리와 함께
여자는 바닥에 패대기쳐졌을 것이다
한껏 벌린 입속에서 악에 받친 침이 사방으로 튕겨
오른다
한구석에 해바라기 씨앗처럼 웅크린 아이들은
껌껌한 벽에 자신을 밀어 넣으려
온 몸을 콩콩여 글썽대었을 것이다
창문 옆 찢겨나간 긴 커튼 자락을
서로의 귀와 입에 틀어막고 그 벌건 눈알만
껌뻑껌뻑였을 것이다
사내의 억센 악력에 쾅, 쾅, 쾅,
새파랗게 휘둘려졌을 심장소리
한 끝 그 속에서도 쥐구멍에 볕들 날처럼 해맑은 날
있었나
차라리 맘껏, 맘껏 구경하시라
여자는 반쯤 혼이 나간 낯빛을 지우고
아이들을 싸안고 나름의 밝은 풍경을 품은 다른
액자 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여자의 산발한 머리카락이 먼지처럼 흐트러진다
손을 늘어뜨린 한 남자만이
정적에 홀로 남겨져 있다
검은 도둑고양이 한 마리 담벼락을 뛰어넘는다
이 몇 컷 안 되는 그림들이 전부인 양
관람객들은 자기식대로 조잘대는 것을 잊지 않는다
(정말 막돼먹은 작품들이야)
팔짱을 끼고 서 있던 그들이
먼저 간 이들을 따라 흩어져 돌아선다
그림들이 그들의 등 뒤에서 재빨리 지워진다
서서히 어둠속에 표구되어 걸리는 그 미술관
*시집『쪽』에서/ 2011.4.15 <시안> 발행
*정영경/ 서울 출생, 2005년『시안』으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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