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 단시초 小雅 短詩抄
정숙자
불 건너에 계신다 하면
불 건너에 계신다 하면
온몸 태워라도 건너리이다
물 건너에 계신다 하면
허옇게 누워라도 건너리이다
자나
깨나
마음의 강은
폭포 되어 임께로만 떨어지는데
끝없이 풀려나는 솔바람 소리
안고 가던 두견 울음 되돌려 놓고
화살 맞은 듯
터지는 철쭉
비명처럼 붉게 널리어*
그리움 겹쳐 안고 가는 물굽이
하늘 맺어 만 리라도 흐르리이다
*『문학정신』1988년12월호「小雅 短詩抄」1연
-시집『그리워서』(1988. 명문당,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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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도 사모의 표시
외로움도 사모의 표시
그림자 함께 길을 갑니다
먼 데
두루미
끌어안은 품
빗돌 같은 서러움인데
호심에 잠긴 몽유도원도夢遊桃園圖
연蓮구름 짝하여 한아한 잉어
매 맞은 듯 멍든 제비꽃들은
낮은 키 어느 잎에 힘을 쌓았기
어두운 운명 冠처럼 이고
봄 언덕 아로새긴 별로 떴는지*
임 섬기려
모두를 버린
그 이름 모를 죄에 갇히어
피조차 잿빛으로 사위는 연옥
그림자도 아픈 길을 내내 갑니다.
*『문학정신』1988년12월호「小雅 短詩抄」4연
-시집『그리워서』(1988. 명문당, 3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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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리와인드 필름
1. 결핍이 열정을 낳는다. 열정은 인내를 키우고, 인내는 극복을 지향한다(2008.1.31日記). 1988년 당시. 나는 문단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생짜 촌뜨기였다. 역사를 거슬러 우뚝 솟은 동서양의 고전을 탐독하며 그 고매함만을 추수하는 井底之蛙였다. 정규 교육제도를 이탈하여 독자적으로 인생항해선을 탔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동생이 영문학을 전공했기에 현대적/문학적 사고에 적잖이 자양분을 공급받았지만, 돌이켜보건대 구체적인 접근에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시절 동생과 나눈 심오한 철학과 이상은 얼마나 진지하고 진취적이며 예리하고 순수했던가.
2. 그대/다정한 마음 있으면/나는 맨발로도 언 길 가겠네(抄錄42연). 내 등단작품은 총 127행 46연으로 된 초록이다. 일면식, 일통화, 일서신도 없었던 미당 선생님께 대뜸 서문을 써 주십사고 첫 시집 원고를 우편으로 띄웠었다. 선생님은 어린 날 교과서에서 뵈었을 뿐 아니라, 다정다감한 서한집 등을 통해 나로서는 누구보다도 친숙(?)한 처지였던 것이다. 며칠이 지났을까. 선생님께서는 겉봉에 적힌 우리 집 전화번호로 연락을 주셨다. 난생처음 일러주신 길을 더듬어 찾아뵈었을 때 “序 ․ 말 속에 담기는 情景의 미묘한 調和”라는 제목의 친필 옥고를 내어주셨다.
3. 끝까지 곧게 서/타는 심지엔/귀신도 놀라 달아나려니(抄錄12연). 그 첫 시집이 발행되기 전 선생님께서는 『문학정신』으로의 등단을 허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 전 해 이미 모 계간지로 등단한 상태였기에 정중히 고사하였다. 선생님의 걱정이 매우 컸지만 나는 나대로 ‘신의란 이런 것’이라는 듯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하룻강아지만이 저지를 수 있는 용감무쌍이었다고나 할까. 이러구러 눈물범벅 피범벅 내 첫 시집에는 지금도 등단지가 모 계간지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 일은 그일! 나는 두 번째 시집 원고를 들고 다시 찾아뵈었고, 선생님께선 또 한 번의 서문을 내어 주시며,
4. 그대/다정한 마음 있으면/나는 눈멀어도 꽃을 보겠네(抄錄43연). <이번엔 당선소감을 가져와라. 문학을 그만둘 사람 같지 않으니, 먼 훗날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타이르셨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시집 원고에서 손수 글귀를 솎고 배열하여, ‘小雅 短詩抄’라는 작품명으로 『문학정신』1988년 12월호 신인상을 주셨다. ‘小雅’라는 아호는 내 스스로 지어 쓰던 것이었는데 “詩經에도 나오는 말이고, 작고 겸손해서 괜찮다”고 ‘短詩抄’ 앞을 수식하셨다. 이후 약력란엔 등단지 두 개를 나란히 기재했으나, 모 계간지 측의 요청에 따라 『문학정신』하나만을 쓰게 되었다.
5. 내 묻힌 뒤/함박눈 되어/임의 발자국 안고 잔다면(抄錄26연). 재등단 과정에서 겪었던 고뇌와 갈등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옳으냐 그르냐 사이에서 선택기준이 모호했던 것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었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내 입장은 진퇴양난이며 도탄이었다. 결국 旣등단지에서 시인으로서의 내 ‘장래’에 초점을 맞춰줬으나, 세상에 어두웠던 나의 문단일지는 출발부터 그렇게 시뻘건 통증이었다. 그러나 미당 선생님께서는 그 일로 인해 나를 흔치않은 사람으로 여겼으며, 어느 길목에서는 ‘인간을 인증한다’는 친필 소개장 말미에 인장을 눌러주시기도 했다.
6. 뒷산 바위들 몇 억 년 전에/내 안같이 서서 모은 기다림일까(抄錄41연). 등단 배경이 되어준 나의 1․2시집은 전체가 ‘思慕’라는 한 가지 주제의 연작시였다. 1․2시집에 각각 108편씩, 그러니까 총 216편이 수록되었다. 사모의 대상은 ‘임’이었는데, ‘임’이란 ‘님’과는 다른 모티프이다. 사전적 의미로도 ‘님’은 임금님 스승님 부모님 등 높임의 뜻을 나타내는 말이고 ‘임’은 “임도 보고 뽕도 딴다”는 속담에서와 같이 연모의 대상이니 말이다. “나의 영원한 임, 詩神께/이 첫 詩集을 바칩니다”라는 두 줄의 헌사가 첫 시집 첫 페이지에서 지금껏 여백을 지켜주고 있다.
7. 부적처럼 목에 건/임의 이름자/부여안고 당한 斬首 몇 번이런지(抄錄25연). 연작시를 쓰는 동안, 나는 사모에도 3요소가 있다는 점을 발견했다. 그리움, 기다림, 외로움이 그것이다. 굳이 나누자면 셋이지만, 어느 하나에도 나머지 둘이 다 들어 있어 이 셋은 나누려야 나눌 수 없는 한 덩어리 마음이다. 그러므로 3요소 중 그 무엇이 주체가 된다 해도 문맥의 흐름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思慕’ 연작시를 구상할 때, 조선여인의 정한을 매개물로 삼고자했다. 그리고 216편 모두 첫 행을 제목으로 올렸다. 일련번호만으로는 허허로웠고, 일일이 다른 제목을 붙이는 것도 무의미한 일로 판단되었으므로.
8. 나에게는 그대 말고는/누구의 사랑도 썰물이라오.(抄錄35연). 첫 시집에서는 궁중 어체를 차용했다. ~옵니다, ~오리까, ~나이다, ~소서 따위 어미가 대다수였다. 조선시대식 여인의 심상에 그런 가락을 입혔으니 현대시와의 괴리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그럼에도 미당 선생님께서는 “초시대적 고전적 어풍들이 박물관적인 것으로 전해져오는 게 아니라 생생히 살아 작용하는「永續語風」”이라고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다. 일구월심 시를 향한, 한없는 어리석음을 측은히 여기셨음이리라. 장차 내 무덤 위에 풀꽃이 솟아난다면 그 꽃은 여느 풀꽃이 아니라 그날의 감사와 기쁨, 황홀의 여운이리니.
9. 포갠 분 냄새 겹겹이 열어/공중에 띄우는 꽃들의 문안(抄錄18연). 등단작의 초록이 점점이 박힌 제2시집 『그리워서』는 옛 여인의 피어린 심연을 그리되 中庸思想을 수용코자 했다. “한 시대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詩精神에 가장 많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 잘 각성된 자기인 것인데, 이 점에서도 나는 그녀의 글을 보고 믿는 데가 있어, 그녀를 우리 시의 한 좋은 實驗家로서 크게 주목하는 바이다(미당 서정주).” 반역이라 할 정도로 시계를 거꾸로 돌린 思慕篇. ‘가장 옛스러운 것이 가장 한국적’이라는 기치 아래 무모에 가깝도록 과감했던 것이다.
10. 매 맞은 듯 멍든 제비꽃들은/낮은 키 어느 잎에 힘을 쌓았기/어두운 운명 冠처럼 이고/봄 언덕 아로새긴 별로 떴는지(抄錄4연). 유년기의 나는 구석에 놔둔 보퉁이가 아닐까싶게 조용했었다. 허약했고 얼떴다. 사정이 그랬으니 활발한 동작은 거의 없었고 알 수 없는 생각만이 이어졌다. 부모님이 고추를 따다가 마루 한가득 부려놓으면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꼼짝 않고 제자리에 앉아 그걸 고르고 다듬었다. 그러나 열 살을 넘으면서부터는 자의식이 떡잎을 내밀었다. 학교에서 가정시간에 단체로 만든 수예품일지라도 남들과 똑같은 결과물을 제출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11. 해안에 찰싹이는 파도 소리는/여위도록 적어내린 戀慕의 글발(抄錄4연). 요새도 간혹 나를 ‘괴짜’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는데 과히 거북하지 않다. 나는 그 괴짜와 손잡고 여태껏 살아왔다. 기왕이면 ‘괴짜’의 정수리가 새로움을 추구하는 촉수로 움텄으면 좋겠다싶다. 그것의 성장이 파격이었으면 더욱 좋겠고, 그 파격이란 것 또한 쓸모없는 게 아니라 囊中之錐의 ‘추’가 되어준다면 더더욱 좋겠다싶다. 文臘이 구태의연을 상징하는 용어로 주름진다면 무슨 염치로 뮤즈의 변함없는 사랑을 기대할 수 있으리오. 1나노의 각도를 틀기 위해 혼신을 기울일 것, ―자신에게 명한다.
12. 최후에 이겨라. 역전패의 위험이 없도록(1986.10.20日記). 이 글의 도입부에 소개한 일기와는 20여 년의 시간차가 난다. 미등단이었던 그때, 무의식은 벌써 운명을 진단했었나보다. 역전패의 위험이 있어서가 아니라 최후까지 뻐르적거려야만 될 항로를 알고 있었나보다. 밤새워가며 부풀렸던 동생과의 이상향도, 미당 선생님께서 누누이 확신하셨던 나의 문학도 간밤의 꿈이었던 것만 같다. 오늘토록 단 한번도 딴 맘먹지 않고 한 길을 걸어왔다는 진실 속에 저간의 온갖 희로애락이 서려 있다. 또 한번 봄이 오는가? 겨우내 닫혔던 창문을 열고 심호흡을 해봐야겠다. 봄아, 봄아, 불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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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사랑하는 사람들』2008년 3-4월호「나의 등단작을 말한다」(P. 130~137)
* 정숙자/ 시인, 1988년『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감성채집기』『정읍사의 달밤처럼』『열매보다 강한 잎』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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