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등단작 / 추천사 / 당선 소감
정숙자
『문학정신』 198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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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작 / 小雅 短詩抄
화살 맞은 듯
터지는 철쭉
비명처럼 붉게 널리어
어린 마음
앓는 思慕
이마는 해넘이 무덤과 같고
그러면 사약 같은 그리움 없고
기다림에 휘이는 한숨도 없고
비치는 건 투명한 고요뿐일 걸
매맞은 듯 멍든 제비꽃들은
낮은 키 어느 잎에 힘을 쌓았기
어두운 운명 冠처럼 이고
봄 언덕 아로새긴 별로 떴는지
열 두 대문
닫힌 듯
어둔 마음속
묻어 둔 눈물 奢利로 굳고
일만 이천 봉
금강산 모양
이 몸 주름져 엎드렸으나
침묵도 닦아야 빛이 드옵기
더 깊은 침묵 내어 헹궈 둡니다.
있는 그대로 해맑은 풀꽃
이슬 축여서 씻으심같이.
해안에 찰싹이는 파도 소리는
여위도록 적어내린 戀慕의 글발.
<우연한 길 스치거든 돌아보소서>
낮달 하나 서찰 품고 구름 탑니다.
빈 방 외로움 너무 무서워
경상에 낮촛불 밝혔나이다.
끝까지 곧게 서
타는 심지엔
귀신도 놀라 달아나려니
물거품에 잠시 드는 볕뉘만큼도
어둠에 잠시 뜨는 별똥만큼도
비추지 않는 임은 돌이더이까
하루에 하나씩 버리라시면
삼백 예순 다섯 모두 지우오리다
설령 그것이 살이라 해도
설령 그것이 뼈라고 해도
날마다 날마다 한 눈금씩만
임을 향해 자라나게 해주셔요.
햇빛 석 자 넉 자 물에 빠지면
그 기쁨 안고 크는 해초들처럼
숨지운 붕어처럼 허연 낮달은
이승에 떠다니는 喪章이러니,
사모의 심연에 떠다니는 돌
침묵으로 달구어 玉을 만들 때
새들이 피우는
노래의 香은
온누리로 풀풀 날아 내리고,
포갠 분냄새 겹겹이 열어
공중에 띄우는 꽃들의 문안.
태어나기 전
박꽃이었기
다시 일어도 박꽃이오니,
사모의 념으로 타는 이 영혼
이전에도 思慕草 아녔아오리?
고쳐섰다 나부끼는 옷고름마다
기러기들 놓고 가는 눈물의 숯불
폭포수 아름으로 끌어안아도
기름인 듯 화염은 세어만 지고
공중에 무늬 놓는 새의 지저귐
공후(箜篌)처럼 곱지 아니합니까?
모든 이 이 땅을
고해라 해도
임 생각 모으면 극락이어니
장마비 몰리는 마파람 속에
징검다리 디디듯 닿은 초저녁
외로움 함께 할
촛불을 켜고
북향사배 올리나이다
부적처럼 목에 건
임의 이름자
부여안고 당한 斬首 몇 번이런지
내 묻힌 뒤
함박눈 되어
임의 발자국 안고 잔다면……
어둠은 직녀의 베틀인지요?
은하수는 이어 짜는 명주인지요?
쏟은 구슬
영롱한 별은
그리움 위에 뿌린 눈물인지요?
遺言도 공중에 사위는 謫所
하늘과 땅이 알면 그뿐이오니
사모의 몸으로 기던 벌레는
상엿길에 나비 되려 잠에 듭니다.
누군가 제 영혼 볼 수 있다면
가맛불의 삶인 줄 아시겠지요?
청자, 백자도 구워 낼 불꽃
임 그리면 일고 일어 뼈도 탑니다.
돌부리 안고 울다 떠나는 물살
기러기 울음에 꽃상여 되오.
스러질 듯 떠오를 듯 혹은 멎을 듯
분꽃 속에 피는 마음 누가 알까요?
능금 곁에 익는 마음 누가 알까요?
나에게는 그대 말고는
누구의 사랑도 썰물이라오.
드릴 수 있는 건 꽃마음 하나
山蔘 같은 글발뿐이기
구름에
바람에
별 틈에까지
산 채로 저승 넘어 드나듭니다
뜰에 내려 글썽이는 뭇별 보거든
붓에 재운 눈물인 줄 여기옵소서.
소첩의 詩帖이 고욤이라면
임의 노래는 잘 익은 天桃.
설풋잠 夢遊桃園 生을 잊었죠.
문 앞에 과객인 듯 멎는 새아침
임인가고 보며보며 머리 흰다오.
뒷산 바위들 몇 억년 전에
내 안같이 서서 모은 기다림일까.
그대
다정한 미소 있으면
나는 맨발로도 언길 가겠네.
그대
다정한 마음 있으면
나는 눈멀어도 꽃을 보겠네.
귀뚜라미 이슥토록 거문고 타면
그리움 풀잎 위에 얹고 싶어라
이슬처럼 조그마한 몸
그같이 조용한 얼굴을 하고
달은 뉘에게 길 물어 가고
해는 뉘에게 길 물어 오나?
재 너머 어리운 구름 한 조각
무슨 볼 일 있어 내게로 오나?
- 全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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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推薦辭 / 서정주
포올 발레리는 일찌기 그의 「파스칼論」에서 '파스칼의 글에서도 역시 손재주는 드러나 보인다'는 뜻의 말을 한 일이 있다. 물론 이것은 파스칼의 글에 드러나는 그 표현의 기교라는 것을 지적해서 하신 말씀이다.
小雅 鄭淑子여사의 시를 읽으면 前代와 現代가 따로 없는 것을 느낀다. 申師任堂이니 許蘭雪軒이니 黃眞伊니 하는 그런 과거의 여류시인들은 죽어 버린 것이 아니라, 다시 현대에서도 살아 정 여사의 詩句 속에 들어가 정 여사와 함께 숨쉬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내게는 따분한 것이 너무나 많은 이 현대에서 드물게 재미나는 일이요, 멋있는 일이요, 또 고무적인 일로 보인다.
한 시대만을 사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詩精神에 가장 많이 요구되는 것은 물론 잘 각성된 自己인 것인데, 이 점에서도 나는 그녀의 글을 보고 믿는 데가 있어, 여기에 그녀를 우리 시의 한 좋은 실험가로서 추천하는 바이다.
1988년 10월 27일
未堂 徐廷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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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소감 / 鄭淑子
밤 사이 눈 내리니
대나무 휘노매라
빈 속에 쌓인 축복
어이 아니 무거울까
끊일 듯 밝은 아침에
묶이우는 한 매디.
○ 1952년 전북 김제 출생
○ 『내륙문학』동인
○ 제1회 황진이문학상 수상(1987)
○ 시집 『하루에 한 번 밤을 주심은』출간(1988)
○ 주소 : 서울 용산구 동빙고동 육군아파트 6동 610호(797-2471)
※------당시의 책에 쓰인 대로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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