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문학을 바라보다
시의 성자(聖者) 타고르,
생명력의 불꽃을 노래하다
시집 『기탄잘리』를 다시 읽으며
이현 / 문학평론가
인도에서 타고르를 말하다
라비케쉬 미스라 교수님,
나는 그저께 인도에서 돌아와 서울의 자택에서 여독을 풀고 있습니다. 난 평생 처음으로 연말연시를 외국에서 보냈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인데 이번의 경우는 아잔타 석굴과 네루대학교의 방문이 오래 기억에 남게 될 것 같습니다. 인도 최고의 명문대학교에서 한국어학과가, 그것도 광활한 인도에서 유일하게 설립되어 있다는 사실이 매우 뜻밖으로 느껴졌습니다. 당신은 인도에서의 한국문학의, 크게 보아 한국학의 선구자 아닌가 하고 생각됩니다.
나는 당신을 만나 잠시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그 후에 당신의 인상, 즉 선량한 큰 눈과 반짝이는 눈빛의 이미지를 서울로 가지고 온 것이 아니라 당신의 발표에 대한 기억까지 여기에 가지고 왔습니다. 당신은 제8회 한국 · 인도 문학예술인 국제 학술문화제가 있던 1월 4일에 시인 김영랑을 중심으로 한 발제문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자연 이미지'를 유창한 한국어로 발표하셨습니다. 매우 명료하고 분석적인 발표여서, 이렇다 저렇다 하면서 감히 말씀 드릴 계제가 아니라고 봅니다. 요컨대 나는 한국문학을 전공으로 하는 이로서, 평소에 인도의 학생들에게 한국문학을 가르치시는 데 여념이 없을 당신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때 '타고르와 한국의 인연'이란 제목으로 발표하였지요. 인도의 위대한 시인인 라빈드라나드 타고르(1861~1941)는 저의 전공이 아닙니다. 그동안 한국에서의 타고르 전문가는 영문학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연세대 영문과 교수로 오래 재직하셨다가 작고하신 시인 유영 선생님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타고르에 관해, 그것도 인도에서 말한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었습니다. 아마추어적인 감각의 인상비평 수준에 머무는 것은 당연한 것일 터입니다.
하지만 나의 발표가 시간과 통역에 쫓기어 수박 겉핥기 식으로밖에 이루어지지 않아 나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면이 있어서 새로 원고를 작성하여 교수님께 보내드리니 여러 모로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읽은 최초의 타고르 시
라비케쉬 교수님도 잘 아시다시피, 인연은 불교에서 온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이 말을 전통적으로 매우 좋아합니다. 타고르와 한국의 관계는 한마디로 인연이 있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한국 사람들은 타고르와 한국 사이에 신비롭고도 묘한 인연이 있다고 믿어온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도의 시인 타고르를 존경하고, 또 사랑합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타고르의 시를 읽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전에 「동방의 등불」을 읽었거나 배웠거나 하는 것의 여부에 관해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내 기억 속에는 최초로 만나서 읽고 배운 시는 『기탄잘리(Gitanjali)』제60장일 따름이죠. 이 시는 판본에 따라서『기탄잘리』가 아닌 『초승달』에 실려 있는 시로 분류되어 있기도 합니다.
어쨌든, 나는 이 작품으로써 타고르의 시 세계를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나는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고등학교 2학년 때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 시를 공부했습니다. 이 시를 처음 읽을 때, 내게 있어서의 이 시는 시각적인 풍경처럼 환히 펼쳐졌습니다. 그 풍은 동심에 근거했기에 더 선명하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것이 동심인지 모릅니다. 동심에는 욕망도, 거짓된 감정도, 이해타산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의 마음이 있는 본래 자리에 어린이들의 마음이 차지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이 시는 본디 독립적인 한 낱의 시가 아니라 연작시의 하나여서 제목이 없는 시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개별적인 지위와 가치가 부여된 「바닷가에서」라는 제목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 당시에 내가 배운 타고르의 시는 양주동이란 분의 번역시였습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가없는 하늘 그림같이 고요한데,
물결은 쉴새없이 넘실거립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소리치며 뜀뛰며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모래성 쌓는 아이,
조개껍데기 줍는 아이,
마른 나뭇잎으로 배를 접어
웃으면서 한 바다로 보내는 아이,
모두 바닷가에서 재미나게 놉니다.
그들은 모릅니다.
헤엄칠 줄도, 고기잡이할 줄도,
진주를 캐는 이는 진주 캐러 물로 들고
상인들은 돛 벌려 오가는데,
아이들은 조약돌을 모으고 또 던집니다.
그들은 남모르는 보물도 바라잖고,
그물 던져 고기잡이할 줄도 모릅니다.
바다는 깔깔거리고 소스라쳐 바서지고,
기슭은 흰 이를 드러내어 웃습니다.
사람과 배 송두리째 삼키는 파도도
아가 달래는 엄마처럼,
예쁜 노래를 불러 들려줍니다.
바다는 아이들과 재미나게 놉니다.
기슭은 흰 이를 드러내며 웃습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길 없는 하늘에 바람이 일고
흔적 없는 물 위에 배는 엎어져
죽음이 배 위에 있고 아이들은 놉니다.
아득한 나라 바닷가는 아이들의 큰 놀이텁니다.
오랫동안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 우리말 역본은 한때 오역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내가 보기엔, 이 역본이 오역이라기보다 의역이라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고 하겠습니다.
어쨌든 이 시는 마치 동시와 같은 서정시입니다. 동심을 반영한 흔적이 여기저기에 현저하기 때문입니다. 동심이 시심의 원천이 된다는 생각은 낭만주의의 문학관에서 비롯된 생각이 아닐까요? 이 시의 바탕에는 영혼의 순수성이랄까, 인간 본래의 천진성이랄까, 생명의 근원을 관조하는 신비적인 예지랄까 하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이 시의 내용은 한마디로 말해, 아득한 나라의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두말할 나위가 없이 물외한인(物外閒人)의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거나, 자아와 세계의 친연성을 극화하려고 한 타고르 개인의 사상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상은 타고르 개인의 사상이라기보다는 브라만과 아트만이 한결같음을 말하는 소위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인도 사상인 것이며, 자연친화적인 몰입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범(汎) 동양의 사상이기도 한 것입니다.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ds children meet. The infinite sky is motionless overhead and the restless water is boisterous.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lds children meet with shouts and dances. / - 『Gitanjali』· 60
타고르의 시집 영문판 『기탄잘리』의 제60장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시인이 자신의 모국어인 벵골어로 먼저 쓰고, 또다시 식민종주국의 언어인 영문으로 써 영시처럼 읽히도록 썼습니다.
아득한 바닷가에 아이들이 모였습니다. (On the seashore of endless words children meet)…… 이 바닷가는 바다와 물의 경계이지만 우주론적 영원성의 표상이기도 합니다. 이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들의 경지는 구속 없는 절대 자유의 경지일 것입니다. 시인 타고르가 자유로운 영혼을 동심에 투사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러한 유의 개념은 노자의 무위자연이나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같은 개념과 별반 차이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가없는 하늘 그림같이 고요한데, 물결은 쉴 새 없이 남실거립니다(The infinite sky is motionless overhead and the restless water is boisterous)…… 하늘은 멎어있고 바다는 움직이고 있다. 이를테면 정중동(靜中動)이라고 표현되는 우주적인 하모니의 세계입니다. 천진한 아이들이 바닷가에서 노닌다는 것에는 세계와의 합일을 추구하고자 하는 타고르의 무구, 무욕의 삶의 태도가 그러난 것, 그때 고등학생에 지나지 않았던 나에게는 인도의 신비주의란 것이 미지의 휘장을 들추면서 말할 수 없는 무언가의 감촉으로 아련하게 밀려들고 있었습니다. 나와 타고르의 첫 만남은 이처럼 소중한 인연과 기억의 지층 속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옛길 너머에 새마을이 있어라
라비케쉬 교수님,
중국의 시인 가운데 육유(陸遊)라는 시인이 있었습니다. 중국의 대표적인 애국 시인이지요. 그는 타고르보다 7백 년 정도 이전의 시인입니다. 그 역시 어려운 시대에 살았습니다. 타고르가 나라의 땅이 전부 빼앗긴 시대에 살았다면, 그는 북방 민족에 의해 나라의 땅이 반 정도 빼앗긴 시대에 살았습니다.
타고르의 『기탄잘리』 제37장에 의하면, '옛길이 끊긴 거기에, 놀라움으로 휩싸인 새마을이 드러나 있어라(……where the old tracks are lost, new country is revealed with its wonders)!' 라고 표현한 내용이 있는데, 이는 육유의 유명한 시구와 매우 비슷합니다.
산도 막히고 물도 막혀 길이 있을까 걱정했는데(山中水複疑無途)
버들잎 우거지고 꽃이 만발한 마을이 또 있구나!(柳暗花明又一村)
길이 끝나는 곳에, 또다른 마을이 있다. 고생이 다하면 즐거움이 있다. 이 시구는 절망을 넘어 새로운 희망을 본다는 뜻으로 해석되기도 합니다. 이 점에서 본다면, 타고르의 시에 나타난 정서는 한국을 넘어 아시아적인 공통된 정서를 가지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타고르의 시집 『기탄잘리』를 새롭게 읽어보니 가장 빈도수가 높은 추상적인 단어는 '생명(Life)'이더군요. 이 단어와 관련해 '왕성한 생명의 힘'은 한국 문화의 본질과 핵심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타고르는 19세기 말을 지나서 문학의 꽃을 피웠습니다. 19세기 말은 유럽에서 세기말의 사상적인 물결이 지배하던 시대였습니다. 이 시기의 유럽의 문학인과 예술가들은 주로 죽음, 절망, 퇴폐 등의 성격이 내포된 부정적인 아름다움에 심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타고르의 시는 생명과 희망과 정신적인 건강함으로 대표되는, 소위 인생을 위한 예술을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대의 소설가로는 톨스토이가 뜻을 함께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요컨대, 욕망 · 물질 · 자본 등의 반대편에 놓인 세상에 생명이라고 하는 개념이 존재합니다. 지금의 우리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명은 모더니즘과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떠오르는 키워드인 것입니다.
When I go hence let this be my parting word, that
what I seen unsurpassable. / - 『Gitanjali』· 96
내가 본 세상은 너무도 아름다웠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을 떠날 때 내가 하는 작별의 말이 되게 하소서…… 인생에 강한 집착을 느끼면서 살아온 한국인들이라면, 이 시구에 매우 공감할 것으로 보입니다. 타고르는 세기말에 서양적인 비관주의에 빠지지 않고, 동방의 짙은 낙관주의에 경도되었던 것입니다. 이 낙관주의는 비인간화(dehumanization)라는, 지금 또다른 세계의 위기에 맞서 정치 · 경제 · 문화 · 예술의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는 힘의 원천이 될 것입니다.
시집 『기탄잘리』 제84장은 매우 아름다운 시입니다. 영문학자 장경렬(서울대 교수) 역본을 다음과 같이 인용해 봅니다.
이별의 고통이 온 세상을 뒤덮고 끝없는 하늘에 무수한 형상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 이별의 슬픔은 밤새 이 별에서 저 별로 조용히 눈길을 주다가, 비 내리는 7월의 어둠 속 서걱대는 나뭇잎 사이에서 시가 됩니다.
온 세상이 뒤덮는 이 아픔이 인간이 거주하는 곳에서 사랑과 갈망으로, 고통과 환희로 깊어만 갑니다. 그리고 이 아픔이 녹아 노래가 되어 흐릅니다. 내 안에 있는 시인 마음을 통해.
이 시는 한국의 유명한 애국 시인인 한용운의 대표적인 시편인 「님의 침묵」처럼 매우 아름다운 시입니다. 이 두 편의 시는 내용이 서로 연결됩니다. 이 두 편의 시를 서로 비교하면서 비평적으로 정교하게 분석하면, 매우 흥미로은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나의 과제로 남겨두고자 합니다. 한용운은 정신의 배경이나 문학의 장치들(devices)에 있어서 타고르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물론 모방했다는 것의 의미는 전혀 아닙니다.
주지하듯이, 단어 '기탄잘리'는 '신을 위한 송가(頌歌:hymn)'를 뜻합니다. 이런 점에서 타고르는 신과 인간을 맺어주는 중개자입니다. 세계의 어디에서나, 가장 원초적인 시인의 본디 모습은 주술사입니다. 이 세상 모든 문화권의 시인은 주술사요 예언자입니다. 인도의 전통에서 시인인 '꺼비(kavi)'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중간적인 존재입니다. 한국 역시 최초의 시인이 샤먼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시의 예언적인 기능은 어디에서든 한결같습니다.
타고르는 자신의 감정을 호소하기 위해 자신의 신을 애타게 불렀고, 한용운 역시 연인으로 의인화한 '님'과, 토착적인 한국어로 신의 개념에 해당하는 '검'을 찾고 또 찾았습니다. 이 '님'이건 '검'이건 지금의 한국 일상어로는 죽은 언어가 되어 있습니다. 아마 한용운이 살던 시대에도 일상어로 사용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죽은 언어에 생명을 불어넣어서 되살리려고 한 것도 생명의 힘에 대한 시적인 애착이 아닐까요?
내가 내 자신을 무한히 넓혀 이를 사방으로 향하게 하고, 그럼으로써 님의 찬란한 빛 위에 색색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 그것이 님이 소유한 마야의 세계입니다.
(……)
님이 세워 놓은 이 장막 위에 밤과 낮의 화필이 무수한 형상을 그려 놓았습니다. 그 장막 뒤에는 님의 자리가, 놀라울 만큼 신비로운 곡선으로 짜인 님의 자리가, 그 모든 삭막한 직선들을 거부하는 님의 자리가 있습니다.
님과 ㄴ내가 연출한 놀라운 장관(壯觀)이 하늘 가득 펼쳐져 있습니다. 님과 나의 곡조가 울리자 온 대기가 가늘게 떨리고, 님과 나 사이의 숨바꼭질이 이어지는 가운데 온 세월이 흐릅니다. (장경렬)
이 작품 제71장은 『기탄잘리』가운데서 가장 난해한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이 텍스트는 한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친숙함이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신이 있는 자리는 신비로운 곡선으로 짜인 자리이고 삭막한 직선들을 거부하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어에서, 곡선과 아름다움이란 단어는 같은 어원에서 시작하였다. 즉, '곱다'와 '굽다'는 하나의 언어 가지에서 나왔지요. 한국의 전통 예술은 곡선을 지향합니다. 춤 동작도, 노래의 멜로디도, 건축의 형태도, 도자기의 모양도 그러합니다.
이 시에서 타고르는 인도 문화의 핵심 개념인 '마야(maya)'를 끌어오고 있습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유니크한 환영(illusion)의 세계, 이와 유사한 개념을 한국의 문화 속에서 굳이 찾을 수 있다면, 그건 이른바 '신명'이라고 불리는 개념일 겁니다. 신명은 신과 인간이 합해져 하나가 된 경지를 말합니다. 예술과 민간신앙에 있어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토착신이 최고의 경지에 함께 도달한 것이 신명이란 세계입니다. 말하자면, 신명은 한국적인 스타일의 범주에서 말하는 유니크한 환영의 세계입니다.
영문학자 장경렬은 타고르 시편들에 인간과 신이 만나는 창구가 있다고 말합니다. 님이 세워놓은 장막, 님의 자리, 님과 내가 연출한 놀라운 장관의 하늘 등이 그 창구라고 생각됩니다. 타고르에게 있어서 님은 절대자입니다. 장경렬은 '님과 나 사이의 숨바꼭질'이 왜, 혹은 어떻게 동원되었는지 이 대목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탁견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컨대 시의 성자인 타고르는 생명력의 꺼지지 않는 불꽃을 노래하였습니다. 이 불꽃은 참된 시심에서 비롯된 예지와 경건성의 정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번역의 문제와 전망에 대하여
잘 알다시피, 타고르의 『기탄잘리』는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번역되어 왔습니다. 번역의 대상은 시인 자신에 의해 영어로 중역된 텍스트였습니다. 타고르 자신이 직접 영어로 번역했기 때문에, 여타의 중역의 의미와는 좀 다릅니다. 어쨌든 이 텍스트 가운데, 내 개인적인 취향이 허용된다면, 장경렬의 역본이 가장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만들어졌다고 보입니다. 문제는 어느 정도 한국어답게 번역이 되었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오, 공허한 내 삶을 저 대양에 담가 주소서. 깊은 곳 바닥까지 충만한 그 대양으로 나를 던지소서. 전일한 우주 안에서 단 한 번이라도 감미로운 손길을, 잃어버린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Oh, dip my emptied life into that ocean, plunge it into the deepest fullness, Let me for once feel that lost sweet touch in the allness of the universe.
이 인용문은 『기탄잘리』 제87장 마지막 행입니다. 이 역본은 장경렬 옮김에 의해 이루어진 것. 좋은 번역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국문학자인 나에게는 한결 우리말답게, 보다 더 한국어로 공명하는 느낌의 언어로 옮길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의 여지도 남습니다. 다음과 같은 역본을 제시해 봅니다.
아, 텅 빈 내 삶을 저 한바다에 담그세요. 깊은 바닥에까지 그득한 그 한바다로 향해 나를 던지세요. 단 한 번이라도, 온 누리의 모든 곳으로, 잃어버린 손길, 달콤한 스침을 느끼게 하세요.
이 역본은 내가 하나의 시도와 범례로써 제시해 본 것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말하자면 벵골어 원문을 번역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중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라비케쉬 교수님.
나는 당신이 힌두어 화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제자 중에 벵골어 화자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의 지도 아래 타고르의 모국어인 벵골어로 쓰인 『기탄잘리』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을 시도할 수는 없겠는지요? 이 이야기는 그날 내가 종합토론 시간에 인도 분들에게 제안한 것이기도 합니다. 만약 그럴 수만 있다면, 한국에서의 반향은 예사롭지 않으리라고 봅니다. 이처럼 언젠가는 벵골어 번역자에 의해 제1차적인 번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벵골어 화자라면 더 좋은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타고르와 한국의 인연
아시다시피, 타고르는 일본에 여러 차례 방문하였습니다. 그가 일본에 있을 때, 일본에 있는 한국으 지식인이 한국 방문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당시에 식민지였습니다. 식민지의 여건을 보아서, 쉽게 방문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타고르가 미안한 마음이 있어서인지 한국을 위한 시 두 편을 한국 방문 요청자에게 써준 적이 있었습니다. 이 두 시는 「패자의 노래(The Song of the Defeated)」(1916)와 「동방의 등불(The Lamp of the East)」(1929)입니다.
비교적 긴 형태의 전자는 당시 식민지 백성인 조선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미 써 놓은 작품을 선물한 것이며, 4행시의 간단한 형태인 후자는 그와 같은 식민지 백성인 당시의 조선인들에게 동병상련의 감정을 함께하면서 즉흥시의 메모로 잠겨 준 작품입니다.
이 짧은 시 한 편이 일본 제국주의 지배와 한국전쟁의 고난, 또 그 이후의 민주화와 경제 성장을 위해 한마음으로 애를 써온 한국인들에게 큰 감명과 자신감을 안겨 중 예언과 축복의 시이기도 합니다.
In the golden age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저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등(燈) 하나를 들고 인도한 코리아.
그 등은 다시 한 번 빛을 기다리네,
동방의 찬연함을 밝히기 위하여.
원문의 '램프'는 등이면서, 또 등불입니다. 코리아는 아시아의 황금시대에 등불이었지만, 타고르의 시대에는 불 꺼진 등, 빛이 소멸된 등이었습니다. 코리아는 비유하자면 '램프를 들고 인도하는 사람들'의 한 명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인도 서역 중국 한국으로 이어진 램프의 인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에 의해 아시아의 황금시대는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타고르가 생각한 소위 '아시아의 황금시대'는 어느 시대일까요? 내가 생각하기로는 불교가 세계화되던 시대였을 것입니다. 불교는 인도에서 먼저 꽃을 피웠고,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해져 아름다움을 더했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아시아의 황금시대는 4세기에서 9세기에 이르는 시대이며, 문화와 지혜의 등불을 들고 아시아를 인도한 나라는 인도와 중국과 한국이었습니다. (이 무렵의 유럽은 몽매와 야만의 중세 암흑기였습니다.) 한때 아시아를 문화적으로 주도한 이 세 나라는 당시에 불행하게도 식민지로 전락해 있거나, 반(半)식민지의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국은 그 황금시대에 일본에 불교를 전해 주었습니다. 어디 불교만이겠습니까? 한문, 건축술, 항해술 등도 전해 주었습니다. 황금시대 이후에는 불화(佛畵), 인쇄술, 도자기 기술 등도 전해 주었으니, 코리아가 어찌 램프를 든 인도자라고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타고르는 한국과 더불어 동시대의 슬픔을 함께 하려고 했습니다. 77년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슬픔도 긴 시간 속에서 조금씩 풍화(風化)되어 갑니다. 한국은 비록 나라의 크기는 작아도, 이제는 세계에서 열 번째의 경제 규모를 향해 바지런히 전진하고 있습니다. 수출국의 세계 순위로는 제6~7위입니다. 스포츠 부문에서의 한국은 경제를 더 앞서고 있습니다. 한국의 약진과 발전은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한국의 기적을 만들기까지, 한국인들은 근면과 교육에 치중해 왔습니다. 지금 남쪽의 코리아, 즉 대한민국은 정보기술 산업과 대중문화 등의 분야에서 램프를 든 인도자로서 선도적인 위치에 서 있습니다. 소위 한류(韓流)라고 하는 비유적인 표현이 잘 말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시인 타고르의 예언은 적중했습니다. 위대한 시인이란, 이처럼 미래를 꿰뚫어보는 통찰력을 가진 예언자일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에 핀 진실의 꽃
나는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 왔다는 인도 영화를 보았습니다. 영화를 본 해는 1975년. 지금으로부터 40년이 지난 고등학교 시절의 일입니다. 한국어의 제목으로는 신상(神像) 즉 '신의 모습'이었습니다. 주인공 라주는 자신과 함께 살아가는 코끼리 라무에게서 '신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코끼리는 총을 맞고 주인을 위해 희생합니다. 나는 그때 인도 문화의 경건성, 신비주의, 생명존중 사상에 큰 감동을 받았고, 그 당시에 학교에서 한 해에 한 번씩 나오는 학생들의 교우지(校友誌)에 이 영화와 관련이 있는 글을 쓴 바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이 교우지를 들춰보니 라주가 라무의 영혼을 위로하는, 영화 속의 노래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비정(非情)의 세계를 떠나
영원의 세계에서 진실의 꽃을 피워라.
짐승이 사람을 헤치면 야수라고 이르지만,
인간이 짐승을 죽이면 어찌 그들은 침묵하는가.
라무여, 라무여.
라무의 영전에서 부른 라주의 비가(悲歌)는 그때 나에게 깊고도 큰 울림을 남겨 주었습니다. 아마도 일원론적인 동양의 예지였을 것입니다. 지배와 폭력의 수단으로 근대성을 성취한 서구중심주의의 틀을 벗어난 그 동양의 예지 말입니다. 영원의 세계에서 진실(진리)의 꽃을 피운 이는 성인 석가모니였고, 식민주의의 야수성을 비폭력으로 대응한 이는 성자 간디였습니다. 인용한 슬픈 진혼가는 내 개인적인 인상으로는 타고르의 시에 진배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진 것, 인도 문화의 총체성을 이 한 편의 영화 「신상」에서 엿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그 당시 무슨 생각에서 그랬는지 잘 모르지만, 교우지에 이 영화를 두고 '승화된 휴머니즘의 귀결'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라비케쉬 미스라 교수님.
명문 네루대학교의 한국어학과 학과장으로서 얼마나 노고가 많으십니까? 나와 당신이 한 번 만났으니, 이 만남이 인연이 되어 서로 간에 학문적인 교류가 있기를 희망합니다. 올해 서울대에 박사논문을 청구해야 한다는 스리바스타바 사티안슈 교수님, 유창한 한국어로 사회를 잘 보셨던, 이름 모를 할머니 교수님, 그 밖의 대학원생들에게 우리 일행이 한국으로 잘 돌아왔다고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이 분들에게도 나의 이 글이 굳이 참고가 될 수 있다면 파일로 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에도 당신과 만날 기회가 있길 바랍니다.
그때까지 늘 안녕하고 건강하시길 빕니다.
*『월간문학』2016-2월호 <세계문학을 바라보다> 전문
* 이현(본명: 송희복)/ 문학평론가, 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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