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마라
김명서
삐- 삐리리 삐- 삐리리
점음표처럼 첫 울음을 길게 당겨
새소리를 명치에 얹어놓는다
누가 새소리를 탁란하고 갔을까?
발길을 끄는 대로 한참을 따라가
시냇물에 제비꽃을 던진다
물속에 무언가를 갈망하는 듯한 얼굴이 비친다
오른쪽 얼굴이 진보라고 말한다
왼쪽 얼굴이 허무라고 말한다
진보는 방금 지나간 천년을 생각한다
허무는 다가올 허무를 생각한다
진보를 진화로 허무를 절망으로 해석한 사람들이
나를 보고 왜 새소리를 내냐고 묻는다
나는 오독을 부인하며 그 말을 날려버린다
명치끝이 쿡쿡 쑤셔온다
새소리에 피 한 방울 섞어 땅에 묻고
쉬지 않고 달린다 나의
영혼이 미처 따라오지 못할까 봐* 잠깐 무릎 꿇어 기도하는데
땅끝에서 대지의 신이
새는 우리의 울음을 대신 울어주는 것이라 한다
그러니까
나와 당신 그리고 우리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한 외로움이 있다는 것이다
* 인디언의 풍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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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시회 사화집『 K-POEM 2014』84~85쪽
- 김명서/ 충북 청주 출생, 2003년『시사사』로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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