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화집에서 읽은 시

가을의 음계/ 박수현

검지 정숙자 2014. 5. 19. 14:52

 

 

     가을의 음계

 

      박수현

 

 

  가을이 되자 새소리들이 서로를 닮아간다

  봄철, 제 짝을 찾느라 가파르고 곡진하던 박새 울음이

  여름 한철, 새끼 기르며 보금자리 지키느라

  서슬 퍼렇던 홍관조의 카랑카랑한 울음이

  가을빛에 익어가며 둥글어지고 깊어졌다

  꽃 지고 잎 지는 두어 계절 건너며

  제각각 높낮이 다르던

  울음의 리듬과 빛깔이 모서리마다 붉게 흔들려서일까

  새끼 떠난 성근 둥지에서

  건듯건듯 기름기 빠진 깃털을 퍼덕이며

  가을 숲을 휘도는 울음의 수사학

  나무들도 우듬지부터

  지난 계절 풍성했던 운율과 화성법을 지워나간다

 

  커뮤니티 양로원, 101호 흑인 할머니는

  종일 휠체어에 앉아 새소리를 감아올려 뜨개질하고

  심리학교수였다는 203호 할아버지는

  먼 하늘로 날아가는 새 떼 소리 밟으며

  검은 복슬개를 끌고 저녁 산책길에 나선다

   -『현대시학』201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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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크『시안시인, 숲을 뒤에 두고』. 2014. 5월 / 재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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