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한 편

사랑의 이중주/ 장재화

검지 정숙자 2024. 1. 27. 01:33

<에세이 한 편>

 

    사랑의 이중주

 

     장재화

 

 

  2020년 12월의 중국 풍경, 하루라도 빨리 이혼하려는 부부들이 관청 앞에서 진을 치고 있다. 현재는 합의이혼이건 소송이혼이건 간에 어렵지 않게 이혼할 수 있지만 21년 1월부터는 법이 바뀌기 때문이란다. 

  바뀐 법에 의하면 이혼신고 후, 30일 동안 숙려기간을 가져야 한다. 그동안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바뀌어 이혼 의사를 철회하면 이혼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러니 법 개정 이전에 이혼하려는 부부들은 안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중국인들, 참 쉽게 결혼하고 쉽게 이혼한다. 2019년 통계에 의하면, 950만 쌍이 결혼했고 415만 쌍이 이혼했다. 두 쌍 중에 한 쌍 꼴로 파경을 맞았다고 하니 그들은 이혼 연습 삼아 결혼하는 것 같다.

  그들도 결혼식장에서 엄숙하게 서약했을 것이다. 검은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혹은 하늘이 부를 때까지 한 몸처럼 사랑하며 살겠노라고··· 하지만 지금은 헤어지기 위해 저리 바쁘다. 그렇게 돌아선 두 사람에게는 시원함과 더불어 조금쯤의 아쉬움만 남는다. 어디 중국만 그럴까. 우리나라도 세 쌍의 부부 중 한 쌍 꼴로 이혼한다고 하니 중국인을 마냥 흉볼 일은 아니다.

 

  결혼을 분류하면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 첫 번째가 사회적 결혼이다.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린 뒤 혼인신고를 하여 주위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결혼을 말한다. 또 결혼식은 올리지 않고 혼인신고만 하는 법적인 결혼이 있는가 하면, 그런 저런 절차 모두 무시하고 동거부터 시작하는 물리적 결혼, 집안에서 반대하거나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가 좋지 않을 때 몰래 하는 도피성 결혼도 있다.

  정략결혼은 부모나 친권자가 자신의 경제적 또는 정치적인 이익을 위해 당사자의 의견을 무시한 채 억지로 시키는 결혼을 말한다. 그렇게 결혼한 부부는 사랑보다는 배경이나 재산을 위로 삼아 결혼생활을 유지한다. 그러나 사랑의 오묘한 섭리를 어떻게 알랴. 그렇게 등 떠밀려 결혼했지만 진정한 사랑에 눈 떠 행복하게 사는 부부도 많다.

  조금쯤은 엉뚱해 보이는 결혼도 있다. 계약결혼이다. 기간이나 의무 등을 정하여 놓고 하는 결혼을 말하며, 결혼제도를 무시하거나 상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할 때는 이런 방법을 택한다. 게중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성인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계약결혼이다.

  사르트르는 보부아르에게 2년간의 계약결혼을 제안했고 보부아르도 동의한다. 계약조건도 특별했다. 동거를 하면서도 다른 사람 만나는 것을 허락하고 또 그 사람과의 사랑도 인정한다. 상대에게 어떤 것도 숨기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도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한다는 것이다.

  그게 과연 사랑일까 하는 회의를 느낄 만도 하지만 놀랍게도 그들의 결혼은 몇 번의 위기를 만나 출렁거리기도 했지만 50년간이나 지속되었다. 권력과 경제력에서 오는 포만감이 그들의 결혼생활을 유지하게 했다고 하니 진정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우리네 부모님 세대만 해도 대부분이 중매로 짝을 찾았다. 게중에는 신랑이며 신부 될 사람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혼인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즉 배필 될 사람의 얼굴을 혼례식장에서 처음 본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해서 막연한 호기심과 설렘, 기대감만으로 인연을 맺는다. 그러니 그런 부부에게 사랑과 행복은 살아가면서 채워야 할 인생의 여백이었다. 그 여백을 사랑으로 채울 수도 있지만 미움과 눈물로 채우는 사람도 많았으리라.

  요즘의 중매결혼은 그때와는 다르다. 중매인이 등당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지만, 그들의 말만 듣고 결정하지는 않는다. 수시로 만남의 시간을 가져 상대의 인성, 직장과 재정상태, 가정환경, 장래성, 등등을 꼼꼼히 따져본 뒤에 결혼 여부를 결정한다. 즉 서로가 서로에 대한 탐색전이다. 이럴 때의 결혼은 상대를 사랑해서라기보다는 사랑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을 때 가능해진다.

  연애결혼은 사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맺어진다. 그 사랑은 순수하지만 맹목적이고 절대적이다. 불처럼 뜨겁기에 서로에 대해 장님이 된다. 그래서 위험하다. 시야를 가렸던 콩깍지가 벗어질 때, 기대했던 환상이 깨어졌을 때, 사랑은 간곳없고 후회만 남는다. 

  황혼이혼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란다. 그 어려웠던 시절, 시련이 닥칠 때마다 서로 격려하고 의지하면서 온갖 고난을 이겨냈는데 이제 와서 새삼 이혼이란다. 그렇게 헤어진다고 해서 행복한 삶이 보장될까. 결혼생활은 아내와 남편 두 사람이 연주하는 이중주와 같다. 행복과 불행은 그 이중주가 화음을 이루느냐 불협화음이 되느냐에 따라 나누어진다.

 

  시집온 후, 된장이며 고추장, 멸치액젓을 직접 담그고 있는 아내는 항아리 안의 된장 표면에 핀 곰팡이를 곰팡이라 부르지 않고 꽃이라고 부른다. 곰팡이라고 부르면 어쩐지 제 맛이 나지 않는 것 같단다.

  노년의 사랑도 그렇다. 늙은 남편의 주름살과 검버섯, 젊음이 비켜간 아내의 흰 머리카락을 곰팡이라기보다는 꽃이라고 여긴다면 그 부부의 여생은 꽃처럼 아름다울 것 같다. ▩ (p. 13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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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온문학』 2023-봄(35)호 < 수필>로 등단에서

 * 장재화/ 2004년  한국예총 『예술세계』로 수필 부문 등단, 수필집『산정화』『들꽃 속에 저 바람 속에』『신화의 산 역사의 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