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나비! 나비의 균형과 고독
정숙자 : 권현형
권현형 : 흰 빛으로 기억하는데요. 선생님의 첫 인상 말입니다. 오래 전 어느 문예지에서 마련한 시낭송 자리에서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 혼자 한복을 입고 계셨습니다. 한복도 한복이지만 쪽진 머리에 가리마를 정갈하게 곧은 길처럼 낸 모습이 인상적이었거든요. 고향에 대한 기억을 펼친 시를 읽다가 갑자기 울먹이시는지라 속으로 당황했던 기억도 납니다. 대갓집 부인 같은 자태와 기품 그리고 갑작스런 눈물 같은 것이 상반된 상으로 다가왔기 때문에요. 꼭꼭 여미어진, 쉽게 드러나지 않는 슬픔의 솔기 같은 것이 실수로 풀린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울먹임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에 대한 첫 기억은 여린 빛이 아니라 강한 빛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 시집 『열매보다 강한 잎』의 시편들 곳곳에서 그때의 느낌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는데요. 일테면 「의자 위의 책」이라는 시편에서의 “낮은 어깨는 그러나 그늘을 입었을지라도/중심을 모아 푸른빛을 고른다”라는 구절이 그것입니다. 요즘도 한복을 즐겨 입으시나요? 비단으로 감싼 중심엔 무엇이 숨어 있습니까? 1나노미터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중심 혹은 균형의 세계에 매혹되어 계시다는 생각을 시집을 읽는 내내 하게 되었습니다.
정숙자 : 아니 그 자리에 권 시인께서 계셨단 말씀입니까. 부끄럽습니다. 한복이야 워낙 좋아하는 옷이기도 하고, 딴에는 무대에 대한 최선의 예의이기도 했지만 눈물은 생각할수록 창피합니다. 대중 앞에서의 눈물은 연기가 아닌 이상 감정의 미숙이니까요. 그 때가 99년 6월이었는데 「김제벌 四季」라는 시를 낭독한 날이었지요. “그렇게나 푸른 만경강 언덕/상제나비 눈에 밟힌 우리 부모님!/어깨 무너지는 짐 지고 늙고…” 하는 대목에서 그만 둑이 무너졌던 것입니다. 땡볕에서 일하시던 부모님을 생각하면 늘 눈물입니다. 부모님 코드에서의 눈물은 제어가 안 됩니다. 지금도 또 이렇게… 호호. 제가 대갓집 부인 같다고요? 부분적으로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대갓집 부인이라면 쌓인 한에 있어서도 대가일 테니까요. 제 남편은 군인이었는데 평생 두루춘풍인데다가, 현재는 퇴역 11년째 아낙군수입니다. 알고 보면 저의 한복도 헤어스타일도 모두 유행과는 무관한 내핍경제 콘셉트이지요. 저는 일찍이 남편에게 운명을 팔았지만, 대신 인생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나노미터가 아닌 욕토미터의 균형에도 마음을 써야 할 판입니다. 갈수록 어둡고 쓸쓸해지거든요. 저의 중심엔 무엇이 있느냐고요? 『열매보다 강한 잎』에서 말한 떡잎 아닐까요? 떡잎은 현상이지만 정신입니다. 아, 한복 얘기가 남았군요. 한복은 적어도 며칠 전부터 마음으로 입어야 되는데, 현실이 저를 도와준다면 어느 여름날 다시 한 번 잣풀 먹인 모시적삼 은은히 입어보고 싶습니다.
권현형 : 아, 모시였군요. 모시라서 더욱 정갈해 보였겠습니다. 한 시집에 구원처럼 몇 편의 수작 혹은 절창들이 숨어 있기도 한데요. 절창으로 수작으로 꼽힐만한 시가 없다는 절망감에 시인 스스로 휩싸일 때도 많긴 합니다만, 이번 시집에서 어떤 시편들이 좋다고 회자되는지요? 평론가들이나 시인들이 호의적으로 언급하는 시편은 주로 어떤 시편들인지 궁금합니다. 객관적인 눈(다른 눈)이 시 쓰기의 나아갈 방향 같은 것을 암시하기도 하니까요. 제 개인적으로는「로댕은 묻는다」「의자 위의 책」「모나리자는 듣지 못한다」「문인화」「이인일실」같은 작품이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만.
정숙자 : 평론가와 시인의 기호가 대개 비슷해요. 「무료한 날의 몽상」「열매보다 강한 잎」「로댕은 묻는다」「섬의 정신」「문인목」「의자 위의 책」「모나지자는 듣지 못한다」「나의 니르바나」「이브 만들기」등등인데, 종잡을 수 없을 만큼 꽤 여러 편이 건드려집니다. 권 시인께서 찍은 「이인일실」만은 오늘이 처음이에요. 들킨 느낌! 뜨끔합니다.
권현형 : 서시 <로댕은 묻는다>에서 몸 혹은 본능에 대한 기울기, 믿음이 읽혀졌는데요. 저의 경우도 시집을 묶을 때 첫 시를 많이 망설이고 숙고하다 내얹게 되었습니다. 몸이나 관능은 다다르고 싶은 세계이신가요? 관념이나 사유가 시의 수면 위로 솟아올라 있는 선생님의 경우 몸이라든가 관능이 친연관계에 놓여 있는 것 같진 않아 질문 드립니다. 그쪽 세계로 가고 계신 중인가요?
정숙자 : 시집의 배열은 ‘시작’ 편집부에서 맡았습니다. 제가 했다면 「숲」을 첫 장에 놓았을 거예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편집에서 일단 성공했다고 하더군요. 저도 어느덧 「로댕은 묻는다」가 서시라는 게 좋아졌습니다. 역시 시인은 시 짓는 일 말고는 전문가를 못 당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권 시인 말씀대로 제 시는 관능이라든가 몸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지향점이라면 아무래도 아직 가 닿지 못한 사유의 세계가 아닐까요?
권현형 : 시집을 읽으며 시 속 모델들이 시인 자신을 상당히 많이 투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개인적으로 제가 좋아하는 시편 「모나리자는 듣지 못한다」를 통해 “어느 회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몇 번 뵌 적 있는 선생님의 반듯한 이마가 선명히 떠올랐는데요. ‘정숙자 시인의 모나리자는, 정숙자 시인은 실제로 왼쪽만이 왼쪽 귀만이 깨어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왼쪽만이 삼사십 퍼센트의 파도 소리를 듣는”, 들을 수 있는 비애. 그러한 실존적 육체적 조건이 오히려 예술혼을 극적으로 발전시켰던 사례가 예술사에는 간혹 있었는데요. 선생님 시의 비의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혹 이러한 질문이 선생님의 마음을 냉담하게 아프게 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기도 합니다만 “모나리자의 그늘”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정숙자 : 제 마음 아플 걸 염려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청력이 약했기 때문에 그 정도의 아픔은 불감증(흐흐)입니다. 상대편의 말을 못 알아들었을 때, 되짚어 묻기 곤란할 때 모나리자의 모호한 웃음을 짓곤 합니다. 소리 없는… 딱 그 정도의 웃음… 「모나리자는 듣지 못한다」는 고유명사만 빼면 리얼한 제 귀의 분해도입니다. 큭!
권현형 : 「헐렁한 메모」의 뻑뻑한 사유에 대해 여쭐까 하는데요. “어둠에 갇혀 사유하고, 어둠을 걸러 정화되며, 어둠을 딛고 나아가는 도리가 글 쓰는 이의 항거다”라는 구절에서 도리라든가 항거라는 말이 조금 불편했습니다. 「문인화」를 비롯한 다른 여러 시편에서도 “다른 나쁜 게 될 수 없는” 올바른 것, 그릇됨이 없는 것에 대한 어떤 지향이 읽혀졌는데요. 무균질의 영혼이 갈망하는 무욕의 욕망. ‘도리’와 ‘항거’와 의지가 혹 선생님 시의 무한한 에너지를 가두는 것은 아닌지요? 저는 선생님의 시편 도처에서 묻힌 때로는 드러나는 팽창하고 확장하는 에너지를 많이 느꼈는데요. 그릇되지 말아야 한다는 강박을 갖고 계신 건 아닌가요? 그냥 출렁거리신다면요. 그냥 흔들리신다면요.
정숙자 : 저는 아직도 시를 흔히 말하는 ‘놀이’로 대하지 못합니다. 저에게 시는 종교이며 진정성을 무시할 수 없는 삶의 현장이고 자신의 히스토리입니다. 문장에 있어서나 내용에서 정신인자를 표출하는 게 개성이라고 여기지요.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권 시인께서 말씀하신 ‘도리’나 ‘항거’ 같은 단어들을 과감히 집어넣으려고 의도했습니다. 왜냐하면 시어의 선택폭을 넓히는 일 또한 시도해야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지요.
권현형 : 위의 질문에 이어지는 질문일 수 있겠습니다만, 선생님 시편들에서 잠언적인 요소가 많이 드러나더군요. 깨달음, 성찰에 너무 압도되는 경우 의지가 내상 혹은 내성을 차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잠언적인 것에 대한 경계를 하시는 편이십니까? 아니면 창작 방법의 중심에 두시는 편입니까?
정숙자 : 아,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제 시를 탈잡아왔던 게 바로 철학적이라는 거였습니다. 여기서 저는 짚고 싶습니다. 철학과 철학적인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고 말입니다. 문학적 장치 없이 철학을 토로한다면 그것이 문제가 되겠지만, 제 시에서의 철학은 날것으로 도입된 철학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프레임 안에서의 성찰 또는 지각인 것입니다. 저는 본 것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한 것을 봅니다. 생각이란 자기 여과이기 때문에 마치 주관에 머무른 것 같은 혼돈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외부 스토리를 걷어내면 본질적 차원에서는 다 똑 같으리라고 여깁니다. 잠언이나 경구로 여겨지는 구절들 역시 타자에게 건네는 말이 아니라, 또 하나의 자기를 채근하는 지표였습니다. 그 구도를 특별히 경계하거나 중심에 두지는 않습니다. 매 작품의 성격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분명히 쥐어지는 한 마디가 없을 바에야 왜 글을 쓸까하는 의문이 따릅니다. 그저 잡담조의 퍼즐이나 맞출 양이면 저는 시 쓰지 않을 듯해요. 글을 읽는다는 것은 작자의 의복이나 얼굴이 궁금한 게 아니고 정신세계의 견학, 혹은 탐사가 아닐까요? 그래서 제 작품은 거개가 정경이나 사물의 묘사이기보다는 인식/인지한 바를 말하기 위한 분석적 도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권현형 : 「이브 만들기」를 비롯한 여러 시편들에서 자신의 창세기를 스스로 연 자, 자신이 자신의 기원인 자들에게서 느껴지는 견고한 고독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표현하신 바대로 “외곽으로” “여백으로” 나앉은 고독에 대해 ‘섬’의 ‘정신’에 대해 선생님의 실제 생과 연관 지어 말씀해 주신다면요? 「섬의 정신」은 선생님의 시를 밀고 나가는 추동력 원동력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정숙자 : 섬이요! 제가 올해로 등단 20년째입니다. 그동안 변방에 매달린 처지였으니 저절로 섬이 될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나 그 섬은 기표에 해당하는 것이기에 기의를 불어넣은 작품이 바로 「섬의 정신」입니다. 껍질만 섬이고 알맹이가 거푸집이라면 어떻게 존립할 수 있겠습니까. 방금 전에 말씀드린 대로 자신을 편달하는 과정에서 채록한 각오가 시로 둔갑했습니다. 어둠도 힘이 되더군요. 결국 어둠의 힘으로 오늘에 이르렀지요.
권현형 : 저도 선생님께 몇 통의 편지를 받아 본 적이 있습니다만, 달력이나 폐지를 뒤집어 만드신 겉봉투나 편지지가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겉봉투에 선생님께서 쓰셨던 “헌 종이에 생명을”처럼 소통을 통해 미적지근한 인간관계가 어떤 생명성을 회복한다는 느낌도 받았었는데요. 이번 시집의 ‘편지’ 시편들을 통해 편지를 통한 선생님의 철학, 소신 같은 것이 더 확실히 다가왔습니다. 편지를 통한 동반, 정신적 동반에 대한 열망을 꿈꾸실 텐데요. 혹은 오래 혼자였던 시간을 메우는 방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만. 편지 밖의 세계까지 그 연대가 이어진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아니면 편지를 통해 더 철저히 편지 속 시공으로 빠져드는 경우는 없으신가요? 전 편지는 진짜 외로운 영혼들의 전유물이라는 혹 그릇될지도 모르는 선입견을 갖고 있거든요.
정숙자 : 편지와 편지봉투, 말만 들어도 따뜻해집니다. 「내 오십의 부록」에 썼듯이 편지는 제 삶에서 뗄 수 없는 부분입니다. 시인이 되기 전에는 순수한 안부편지였고, 등단 이후로는 부쳐오는 책을 읽고 띄우는 회답이 90퍼센트 이상입니다. 어린 날, 어떤 우편물을 받더라도 시급히 회답하도록 아버지로부터 훈육되었는데 그것이 접을 수 없는 습관이 돼버렸어요. 지금도 보내온 책은 거의 전부를 꼼꼼히 읽고 회답합니다. 물론 손편지예요. 편지 쓸 때의 우아한 분위기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정입니다. 이면지로 봉투를 만드는 일 또한 신성에 가깝습니다. 어떤 행위보다 깨끗하고, 고요하고, 빛나는 명상입니다. 손에 익은 그 작업을 하노라면 졸리지도 않고, 시간이 헛되지도 않고, 공기와도 친숙해집니다. 아주 오래 전, 어느 대가에게 만든 편지봉투를 사용했다가 “감히 나를 무시해!!” 라고 크게 욕먹은 일이 있어요. 그 때부터 오해를 줄이기 위해 ‘헌 종이에 생명을’ 이라고 쓰기 시작했지요.
권현형 : (물방울에서 물별, 태양, 열매, 뿌리, 잎, 벌레, 인간에 이르는) 선생님 시세계의 넓은 스펙트럼을, 스케일을 시집을 통해 느꼈습니다. 슈퍼마켓 카트를 밀며 슈퍼마켓에서 만나는 ‘낯익은 신’을 「전일 상품」이라는 시에서 노래했듯이 품안에 여럿 기르고 계실지도 모르겠군요. “헌 종이에 따뜻한 생명”을 줄 수 있는 따뜻한 신요. 종교를 갖고 계시나요? 신에 대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요. 신성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을 갖고 계실 것 같아 질문 드립니다.
정숙자 : 저는 불교를 좋아합니다만, 작품에서의 신은 그런 범주가 아닙니다. 티끌에서부터 우주까지를 주관하고 내려다보는 절대자의 상징적 지칭입니다. 그야말로 그리스도나 샤카모니 개념이 아닌, 그 이전부터 존재해온 ‘신’ 말입니다.
권현형 : 네 저도 그런 개념으로 이해했습니다. 어쩌면 범신론적인요. 불교에서 말하는 인드라망, 생명끼리의 유기적 연대의 그물망에 대한 생각을 「이인일실」이라는 시로 표현하셨는데요. “내 환부가 아무는 만큼 꽃들은 죽어간다/물도 깜깜 썩어간다/그럼에도/ 꽃은 물은 서로를 돕고 있다/끝까지 살고 있다,-이것이/고요다...//그만 자살에의 욕구를 내려놓는다/몇십 억 마구 꽃힌 다인실에서/그림자 뿌리까지 타기로 한다” 전 이 시가 참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지구의 생태를 다인실로 견디기 어려운 공간으로 표현하셨는데요. 생태에 대한 관심을 생명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시로 표현하실 건가요? 생명과 이인일실로 묶을 수 있는 자살에 대한 시편들도 재미있게 봤습니다.
정숙자 : 지속적으로 표현하게 되겠지요. 모든 생명체는 생명과 생명의 연결선상에 놓여 있으니까요. 이 말을 하려면 벌써 저 말이 와 있지 않아요? 그래서 스펙트럼이라는 용어도 적합/가능하고요. 좀 전에 “들킨 느낌! 뜨끔”하다고 했는데, 여기서 고백하겠습니다. 꽁꽁 싸둘까도 했지만 비밀 하나쯤 털어놔야 권 시인께서도 재미있을 것 같군요. 저는 삼십 전후로 두 번의 자살을 결행했습니다. 한 번은 음독, 또 한 번은 가위로 혈관을 집었어요. 전자는 두루춘풍이 갖다 준 약을 훌러덩 마신 거였고(그러니까 정확히 하자면 타살성 자살이었죠), 후자는 두루춘풍 때문에 그냥 자퇴하려던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두루춘풍이 말하기를 “그건 무좀약이었다”고 해명했지만… 그때 타들어가던 혀, 갈증, 어둠, 슬픔, 허무… 회복기에 일어났던 원형탈모, 악취, 두 아이에 대한 죄책감…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혈관은 생각보다 질긴 것이더군요. 가위가 미끄러지더군요. 느닷없이 두루춘풍이 나타나 미수에 그쳤습니다. 그때 약속했죠. 신에게, ―절대로 두 이이를 결혼시키기 전에는 이런 짓 않겠다고, 그렇지만 아이들 결혼시킨 다음에는 마음껏 아무렇게나 살겠다고… 그런데 여전히 아무렇게나 사는 게 권 시인께서 말씀하신 인드라망에 걸려 실천되지 않습니다. 참고 참고 또 참는 굴레의 연속일 뿐이에요.
권현형 : ……그런 탓일까요. 정숙자 선생님 시에서는 참고 참는 자의 “깊이 박힌 의지”가 느껴집니다. 속도와 게으름에 대한 성찰 시편들을 읽고 궁금했었는데요. 손빨래 하시나요? 세탁기는 전혀 안 쓰십니까? 게으름에 대한 사유들을 펼치는 ‘무위’ 시편들은 근작이신가요? 혹 도가의 영향이신가요? 무위를 통해 시가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가 궁금합니다.
정숙자 : 네, 전부 손빨래해요. 탈수만 세탁기로 합니다. 저는 자연주의자거든요. 세탁기를 쓰자면 세제를 많이 사용하게 되고, 물도 그냥 내버리게 됩니다. 양말과 속옷을 함께 빨기도 곤란하고요. 친환경 비누로 손세탁하고, 헹군 물은 큰 통에 모았다가 한 대야씩 변기에 부어 재활용합니다. 채소를 씻은 물도 간혹 주방에서 화장실로 옮깁니다. 강물이 오염될까봐 머리털도 염색을 안 해서 이렇게 하얗지요. 어릴 때 어머니가 일러줬어요. 나무(땔감)를 아끼면 산신령이 돌보고, 물을 아끼면 용왕님이 돌보신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제가 아끼는 종이 한 장, 한 바가지 물의 입자들이 언젠가는 저를 도와줄 거라고. 「無爲集」10편은 2003년부터 2005년 사이에 썼습니다. 로만 오팔카(Roman Opalka)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는데 노후에 쓸까 했으나 모더니티에 흡수된 저의 시들이 갈수록 작위적이어서 ‘꾸밈없는 일상’을 ‘기교 없이’ 코너로 남겨두자는 생각에서 앞당겼지요. 정신적으로는 도가적 무위, 문학적으로는 기법상의 무위를 혼합한 것입니다.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 ―예전에 물었다면 대뜸 ‘고요’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각도가 바뀌었어요. 숨지는 순간까지 ‘열심히’라는 국가의 시민이었으면 합니다.
권현형 : 책을 ‘서점에서 꽃을 사는’ 마음으로 사시나요? 열 수레 스무 수레라도 아파트를 팔아서라도 책을 사 읽으실 분이라는 생각을 시 「서점에서 꽃을 사다」를 읽고 하게 되었습니다. 책 욕심이 유달리 많은 편 아니신가요? 어떤 책들이 선생님의 “그림자 뿌리까지” 적셔 주었는지, 살고 싶은 힘을 주었는지 말해 주세요.
정숙자 : 으하하, 질문이 유쾌합니다. 아파트를 팔아서라도 책을 살 수 있(?)겠지만 저는 워낙 읽는 속도가 느려 아파트는 안 팔아도 될 것 같군요. 그리고 저는 절대로 누구한테도 책을 빌려주지 않습니다. 물론 빌려 오지도 않지요. 딸이 빌려 달라고 해도 아예 그 책을 사주고 맙니다. 밑줄도 그어야 되고, 노트도 해야 되고, 아무 때나 펴보아야 되고… 집안 구석구석 꽂아둡니다. 저의 독서 패턴은 주로 고전이었습니다. 아낙군수 때문에 요새는 머리맡에 미처 못 읽은 책이 쌓여가지만, 동서양의 고전들이 제 길을 이끌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딱 한 권이나 몇 권을 집기는 어려워요. 그렇지만 자아형성에 있어서는 중국고전과 우리의 옛 책이 좋았습니다. 날카롭기로야 서양의 사상집이나 문학이 좋았고요. 불교 계통의 책과 고금의 시집류는 변함없이 일용하는 양식입니다.
권현형 : 오르한 파묵의 ‘호자’처럼 선생님에게서 진한 친연(어느 시인과도 독대하게 된다면 그런 기분이 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을 느끼게 됩니다. 거울 속 나무 그림자가 닮아 있군요. 『열매보다 강한 잎』이후 시가 어떤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용맹정진하실런지요?
정숙자 : 이번엔 푸하하! 로 웃으십시다. 오르한 파묵의 ‘호자’라면 회교 사원의 성직자이며 선생님을 뜻하는 존칭인데 저는 그저 숙자로서 만족합니다. 이후 시세계는 좀 밝아져야겠지요. 하지만 현실이 어떤 구름을 드리울지 모르겠습니다. 영감은 계획이 아닌 삶의, 부대낌의 산물이니까요. 그러나 인식에 대한 과학적 분석과 프렉탈적 구조, 그리고 문장에 있어서만큼은 끊임없이 천착할 생각입니다. 이건 여담인데요. 『열매보다 강한 잎』한 권을 통틀어 단 한 개의 직유도 섞지 않고 비유를 꾀했는데 혹시 거니채셨는지요? 맑고 따뜻하고 깊이 있는 질문들 애쓰셨습니다. 이렇게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셔서 거듭거듭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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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2005-5월호 <현대시가 선정한 이달의 시인/ 대담>
* 권현형/ 강원도 주문진 출생. 1995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 강릉대 영문과 졸업. 경희대 대학원 국문과 석사, 박사 수료. 시집 『밥이나 먹자, 꽃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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